九龍의 전설 깃든 곳…일본 침탈의 아픈 역사 흔적 곳곳에

난산으로 고생하는 하늘 아래 구룡포
하늘이 만삭의 임산부처럼 무거운 배를 내밀고 있다. 금방이라도 출산할 것 같다. 언제 굵은 빗줄기를 쏟아낼지 몰라 비옷과 우산까지 꼼꼼하게 챙긴 뒤 모포 어항에 섰다. 고깃배가 줄지어 선 포구는 고요하다. 비가 좀 와야 할 낀데. 사람들의 근심을 들으며 마을 어귀를 돌아 바닷길로 접어든다.

C자형 해변이 친화력 있는 여인처럼 다가선다. 그 가운데 서 있는 기암괴석.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여인 같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여 이런저런 이름이 다양하게 붙었겠지만 내 눈에는 영락없는 망부석이다. 등에 업힌 아이는 칭얼대고 배는 자꾸 불러오는데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처연한 망부석을 뒤로하고 자갈과 몽돌을 밟으며 걸음을 옮긴다.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가시덤불에 긁혔다. 선택 착오의 대가로 팔뚝에 붉은 철사 줄 같은 생채기를 남겼다. 역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적은 길은 험난한 거였어.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두 갈래 길에는 반드시 해파랑 표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포해변
망부석으로 보이는 괴석
모포 어항에서 구평리 해안으로 이어진 길은 대체적으로 원만했다. 이곳이 신생대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곳임을 입증해주는 화산암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파도와 염분의 풍화작용으로 형이상학적 모양을 가진 바위를 살피느라 여행이 지루하지 않다. 어쩌면 바위들은 스스로 상처를 내어 그 상처로 재생을 꿈꾸는지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하는 동안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키스를 하는 듯 보이는 바위로 시선이 옮겨갔다.

처음엔 아래의 돌이 위의 돌을 받쳐주는 형상으로 보였으나 사진으로 찍어 보니 영락없이 두 개의 바위가 사랑하는 형상이다. 열렬한 키스. 이곳에서 연인이 사랑의 맹세를 하면 왠지 그 사랑이 맺어질 것 같다. 건강한 에너지를 얻어서일까. 낭랑 18세처럼 마음이 설렌다. 모든 길에 사연이 있듯 자연에도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바위나 몽돌과도 눈 맞추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키스 바위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떨어진다. 하늘의 출산을 애타게 기다려온 과일과 채소가 새들새들한 들녘을 지나니 당산과 소나무 재단이 보인다. 곧이어 구룡포의 효자 하영식 선효각(善孝閣))앞에 섰다. 하영식은 구룡포 구평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모친이 병환으로 앓아눕자 좋다는 약은 모두 구해왔다. 엄동설한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밥상에 꼭 올렸다. 꿩이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겨울 산을 헤맸다. 그러던 중 꿩 한 마리가 물에 빠지는 걸 보았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로 뛰어들었다. 정성껏 요리한 꿩 덕분일까 모친은 거짓말처럼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켰다 하여 조선조 고종 21년(1884)에 진주 하 씨 문중에서 비를 세우고 선효각을 건립하였다.

효자라는 말을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다. 요즘은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사람이 드물다. 자식을 귀히 여기고 보살피는 부모의 마음은 옛날보다 더 진해졌는데 자식이 보모를 위하는 마음은 오히려 더 가벼워졌다. 내리사랑보다 치사랑이 그만큼 힘든 모양이다. 효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 장길리 복합 낚시 공원에 도착했다. 넓은 바다를 보자 마음이 시원하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돔형 펜션이 멋지다.

보릿들교
해상 펜션
장길리는 감성돔과 학꽁치 등 어종이 다양하고 풍부해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히 바다 깊숙이 있는 갯바위를 향해 고속철처럼 높게 쭉 뻗은 ‘보릿들 교량’이 인상적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보릿들교를 걸어보는 것도 이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주말에는 주민들이 관광객을 위해 먹거리 장터를 열기 때문에 장길리에서 생산되는 각종 해산물(전복, 해삼, 소라, 성게) 등을 맛볼 수 있다. 부유식 낚시터와 바다에 떠 있는 돔형 펜션이 카페와 조경이 아름다운 공원으로 이어지는 해안 데크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어, 여가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접시꽃과 바다2
장길리에서 구룡포 가는 31번 국도에는 접시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붉어서 더 요염해 보이는 접시꽃이 난산을 겪고 있는 하늘을 위로해 주려는 듯 화사하게 웃고 있다. 꽃이 예쁘더라도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니 늘 긴장해야 한다. 드디어 대게가 맛있는 구룡포항에 도착했다.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가게에서 삶의 치열성이 보인다. 오늘 종착지는 용 아홉 마리가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구룡포다.

적산가옥 입구
▲ 적산가옥 거리
한일문화 체험관
일제 강점기 때 경관이 수려하고 풍부한 어장이던 이곳으로 가가와현과 오카야마현에서 일본인 어부들이 몰려왔다, 어업 전진기지였던 구룡포는 순식간에 침탈의 현장이 되었다. 그들은 큰 배로 대량 어획을 해서 부를 축적했고 어업과 선박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을 하며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만들었다.

그들의 흔적이 남은 적산가옥 골목으로 들어섰다. 구룡포 공원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 따라 일본식 목조 가옥들이 쭉 늘어서 있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집도 있고 일본 차와 말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도 있지만 골목 끝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한일문화체험관이 있어 유카타와 기모노, 한복을 입어 볼 수 있고 대여해 주는 곳도 있어, 주말에는 젊은 친구들이 옷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룡포 역사 전시관
구룡포 근대 역사관에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하시모토 젠기치가 거주하던 가정집이다. 부부와 딸들이 기거하던 침실과 녹슨 재봉틀, 부엌 등 당시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다. 전시관 1층 정면에 황금빛 엘도라도란 글씨가 붉은 바탕위에 큼직하게 쓰여 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순간 우리 어항이 어찌해서 일본인에게 황금의 나라, 이상적인 낙토가 되었는지, 그들이 부를 축적하는 동안 우리 어민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굶주리고 약탈당하며 노예처럼 살진 않았는지, 그 생각을 하자 누구를 위한 엘도라도인지에 의문이 생긴다.

▲ 시멘트로 발라진 도가와 야스브로송덕비
▲ 신사에 있던 자리에 세워진 충혼각
목조 가옥 골목길을 걸어 구룡포 공원으로 갔다. 일본은 공원을 만들면서 이곳에 신사와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를 세웠다. 해방이 되자 대한청년단 단원들은 송덕비와 신사 건립에 기여한 일본인 이름을 새긴 돌계단 기둥에 시멘트를 부어 발라버렸다. 이후 신사가 있던 자리에는 대한민국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각이 세워졌다. 적산 가옥, 말 그대로 우리나라에 있는 적의 집을(100여 년 전 일본인이 거주하던)둘러보며 한 번쯤 국권을 빼앗겼던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해파랑길 위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가 되겠다.
▲ 글 임수진 소설가

□여행자 팁
△낚시 정보 / 장길리 복합 낚시 공원
바다 위에서 낚시도 하고 회도 먹을 수 있는 장길리 복합 낚시 공원.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인기 만점.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가면 돔형의 해상 펜션이 좋을 듯. 주중엔 15만원, 주말엔 20만원이다. 선상 낚시터(1인 20만원), 카약(2만원~3만원)
□음식 정보
△포항시가 인증한 소문난 전복집 
밑반찬도 맛있고 깔끔하다. 근처에 간다면 여름 건강식으로 전복죽과 전복 물회를 먹어 보면 좋을 듯. 전복회 大 13만원, 小 7만원, 전복물회 3만원, 전복죽 1만 5천원, 구룡포 할매 전복 054-276-3231.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장길리 복합 낚시 공원
여명의 눈동자 촬영 장소
임수진 소설가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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