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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대 교수

예술의 효용(效用)을 속속들이 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논리에 굴복하는 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교나 예술은 ‘아는 것’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사랑이나 미움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의 내면(內面)에는 끝내 미지(未知)의 세계로 남아있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마치 우주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우주를 다 볼 수 없는 것처럼, 그것들은 항상 우리의 지식 세계 밖에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더 결정적이고 섬세하고 무지막지합니다. 예술가들은 우리 안에 있는 그 ‘광활한 우주’를 항해하는 작은 탐사선들의 선장들입니다. 그들은 각자만의 항법(航法)으로 미지를 헤쳐나갑니다. 자신의 배에 탑승한 승객들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예술가의 존재 가치가 결정됩니다. 물론, 선장의 항해술도 중요하지만, 승객들의 수준도 문제가 됩니다. 보고 싶은 것이 많은 여행객에게 좋은 풍경이 많이 제공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보면 예술을 통해서 사춘기의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는 한 어린 영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거친 인생행로에서 예술이라는 좋은 안내자를 만나 크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설 수 있게 됩니다.

완성된 그림 앞에 앉아 있자니, 기이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신상(神像) 혹은 성인의 가면처럼 보였다.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 나이가 없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 있으면서도 남모르게 생명력 있어 보였다. 이 얼굴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나의 일부였다. 나에게 요구를 내세웠다.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와 비슷했다.

그때부터 그 초상이 한동안 나의 모든 생각을 따라다녔고 나의 삶을 함께했다. 나는 그것을 서랍에 감추어두었다. 아무도 그것을 훔쳐보고 그걸로 나를 비웃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 내 작은 방 안에 있을 때면 곧바로, 나는 그 그림을 꺼내어 들여다보곤 했다. ‘중략’ 어떻게 내가 그걸 이렇게 늦게야 비로소 찾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후에 나는 이 그림을 내 기억 속에서 찾아낸 데미안의 진짜 표정과 자주 비교했다. 비슷하기는 해도 똑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데미안이었다. ‘헤르만 헤세(전영애), ‘데미안’ ‘베아트리체’, 110~112쪽’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데미안과 헤어지게 된 싱클레어는 타락한 생활로 학교와 가정의 이단아가 됩니다. 그런 와중에 스스로 ‘베아트리체’로 명명한 이름 모를 소녀를 만나게 되고, ‘사랑하고 숭배할 그 무엇’을 다시 찾은 그는 삶의 방향성을 새로이 정립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싱클레어가 택한 자기 정화의 방법이 예술 창작(그림 그리기)이었습니다. 무의식 안에 있는 어떤 에너지를 예술적 표현을 통해 밖으로 끄집어냅니다.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그리면서 그는 ‘예술 행위를 통한 엑스터시’를 비로소 처음 경험합니다. ‘불타는 초록 물감’을 위시한 ‘작은 튜브에 든 섬세한 수성 물감’들에서 황홀경을 느낍니다. 몇 번의 실패를 딛고 그는 결국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합니다. 스스로 행한 예술이라 인정한 첫 실체(인물화)와 대면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데미안의 얼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합니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의 얼굴’은 일종의 만다라(曼陀羅)가 됩니다.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자신의 내면(의 욕구)을 직시하게 됩니다. 예술의 효용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생산적인 효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만남의 효용’이 있기 때문에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안내자가 됩니다. 자기를 찾아 우주를 떠도는 모든 배들에게 숙련된 도선사(導船士)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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