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당연히 무죄입니다. 스리랑카인은 범인이 아닙니다. 이렇게 만든 경찰과 검찰이 원망스럽습니다.”

정현조(69)씨는 18일 19년 전 숨진 딸 정은희(당시 18세·대학 1학년)양의 한(恨)을 풀어주지 못해 미안하기만 하다고 했다.

이날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998년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정양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강간)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K씨(51)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K씨의 범행 정황을 증언한 스리랑카인 증인·참고인들의 진술이 “객관적 상황이나 진술 경위에 비춰볼 때 내용의 진실성을 믿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양은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구마고속도로에서 24t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양의 속옷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수사를 끝냈다.

검찰은 2013년 9월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의 시효 만료를 한 달 앞두고 2011년 K씨가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입건된 이후 유전자(DNA)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서 검찰은 K씨 공범에게서 범행을 범행을 들었다는 증인을 법정에 세웠으나, 2심 법원은 “스리랑카에 있는 공범으로부터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로 들었다는 새 증인의 진술이 원진술자가 법정에 설 수 없을 경우 형사소송법에서 예외로 규정한 ‘특별히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상태’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또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정현조씨는 “당시 수사만 제대로 했더라면 유력한 용의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었는데, 검찰과 경찰이 나를 무시했다”면서 “당시 수사기관 관계자에 대한 고발, 재심 청구 등을 통해 진실을 꼭 밝히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국가가 내 딸 사건의 진실을 묻었기 때문에 이미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없는 셈”이라면서 “힘없는 사람도 꼭 법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K씨는 2013년 다른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와 2008∼2009년 무면허 운전을 한 별도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집행유예가 확정된 외국인은 국내에서 강제 추방된다. K씨의 공범 2명은 이미 2001년과 2005년에 불법체류로 추방된 상태다.

검찰은 스리랑카의 강간죄 공소시효가 20년인 점을 고려해 K씨를 현지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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