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은 고의로 자신을 해쳐서 숨지거나 1급 장해상태가 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면책사유로 정하고 있어서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지역의 한 금융관련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자살한 A씨의 사례를 들여다봤다.

2000년 한 공공기관에 입사해 2014년 2월까지 신용조사와 보증업무 등을 주로 담당했던 A씨는 채권회수와 소송 등을 주로 하는 부서장으로 발령받았다. 채권회수 업무 경험이 전무 했던 그는 스트레스를 자주 호소했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는 하소연을 했다. 결국, 6개월 뒤 무력감과 집중력 감소, 식육 및 체중감소, 우울 등이 합쳐지면서 ‘주요우울장애’ 진단을 받았다. 다른 정신병원에서는 보직 변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우울장애 발병에 이바지했다는 소견도 받았다. 그는 정신병원과 한의원 등에서 약물과 침술 처방을 받으며 극복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하지만 끝내 2014년 8월 23일 가족이 외출한 사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A씨 아내는 그해 10월 14일 보험사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는 해당 보험사와 2000년 10월 보험계약을 체결했고, 재해로 사망하거나 1급 장해상태가 되면 8천만 원을 지급하는 ‘재해사망특약’도 넣었다.

2개월 뒤 보험사는 자살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라는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A씨 아내는 담당 업무 변경 등 외부적 요인으로 우울증을 앓던 중 정신적으로 억제력이 뚜렷하게 떨어진 상태에서 돌발적인 행동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보험계약에서 정한 재해사망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법원 모두 A씨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대구지법 제2민사부(박만호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우울증으로 자살한 A씨의 부인 B씨가 생명보험회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B씨에게 8천만 원을 지급하라”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망인이 병원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으면서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유서를 남기지도 않은 점 등을 보면 고의로 자살을 계획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우울증이 심화한 상태에서 판단능력이 극히 떨어진 나머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자살을 감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승소 판결을 이끈 법무법인 세영의 이정진 변호사는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 고의가 아닌 우발적인 사고로서 재해로 판단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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