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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대구 토박이 전국구 스타, 트로트 가수 박규리

"국악 공연·강의 통해 애국심·자긍심 심어 줄래요"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7월20일 20시44분  
지난해 9월 대구 수성구 홍보대사로 위촉된 대구 토박이 트로트 가수 박규리씨가 수성못 한 카페에서 경북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오렌지처럼 상큼한 외모인데, 그냥 ‘털털한’ 동네 아줌마였다. 트로트 가수 ‘박규리’. 대구가 낳은 전국구 스타다. 화려한 외모와 드레스로 빛을 발한 박규리는 ‘생각이 깊은 이웃 아줌마’ ‘의식이 또렷한 국악인’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궁중음악에 쓰인 일곱 줄 현악기 아쟁을 전공한 박규리는 예상외로 담백한 인생 이야기를 털어놨다. 수성구 상동에서 태어난 박규리의 나이는 만 38세. 한 살 연상의 남편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이 대구에서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2014년 첫 음반을 시작으로 3집까지 낸 트로트 가수 박규리는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3’에서 인기 걸 그룹 카라의 박규리 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이때 이름을 널리 알렸다. ‘군(軍)통령’으로 불린 그녀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여군특집에 출연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대구 수성구 홍보대사로 위촉된 대구 토박이 트로트 가수 박규리씨가 수성못 한 카페에서 경북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사연은 이렇다. 경북예술고와 영남대 국악과에서 아쟁을 전공한 그녀는 김천과 대구시립국악단 단원으로 활동했고, 중앙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악기를 전공했지만 5도 민요도 따로 배웠다. 이후 강단에 선 그녀는 제자들과 국악연주와 강의를 겸하면서도 군악대와 협연을 할 수 있는 예술단을 만들었다. 차비 정도만 받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리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방부대도 마다하지 안았고, 3년간 1천 회가 넘는 군부대 공연을 했다. 

박규리는 "우리 땅은 열심히 지키면서 왜 우리 국악은 사랑하지 않느냐고 호통도 쳤다. 국악과 음악을 통해 애국심을 심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국악을 뒤로하고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이유도 물어봤다. 그녀는 "어느 날 연예인이 강사로 나선 모습을 봤는데, 국악 강의 때 집중이 잘 안 되던 교사들까지도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을 보고 나도 유명한 연예인이 되면 강의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국악을 버린 것이 아니라, 국악을 더 알리기 위해 트로트 가수를 겸한 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아리랑이나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이 세계에서도 1등 먹었는데, 정작 우리는 서양음악만 칭송하고 우리 음악은 천대하더라"라면서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음악을 말살하는 정책의 잔재가 아직도 많다. 일본의 놀이가 우리의 전래놀이로 버젓이 교과서에 나오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고쳐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규리는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 곳곳에서 국악 공연과 강의로 애국심을 심어주는 것"이라면서 "노래, 강의, 공연도 함께하면서 대구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목표"라며 활짝 웃었다.

▲ 지난해 9월 대구 수성구 홍보대사로 위촉된 대구 토박이 트로트 가수 박규리씨가 수성못 한 카페에서 경북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국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박규리는 가수가 된 이유를 하나 더 알려줬다.

강의와 군부대 공연 등으로 분주하던 2011년 그녀는 뇌출혈이라는 날벼락 같은 진단을 받았다. 시신경 마비도 왔다. 그녀는 "죽다가 살아났다. 이렇게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죽기 전에 가장 해보고 싶은 것 꼭 해보자는 심산이었다"고 했다.

실행에 옮겼다. 발라드 노래를 불러도 소위 ‘뽕 삘’이 가득하다는 점에 착안해 국악의 창법과 비슷한 꺾기도 가능한 ‘트로트’를 택했다. 35살 늦깎이로 ‘사랑의 아리랑’ 등 국악 트로트 노래로 데뷔했고, 지금은 가요프로그램과 종합편성채널에서 예능인으로서 탄탄대로도 걷고 있다.

연예인 생활이 이토록 힘든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던 박규리는 "나는 스타가 될 마음으로 연예인을 한 것이 아니어서 의연하게 즐긴다. SNS나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이 없는 것보다 욕하는 글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국악을 알리기 위해, 가족과 더 행복한 대구생활을 위해 연예인을 겸하는 ‘생계형 연예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고 했다.

수성구 홍보 대사로 10개월째 맹활약 중인 박규리는 "‘무늬만 홍보 대사’가 되기 싫어 내 고향 대구와 수성구를 널리 알리기 위해 목숨 걸었다"며 "대구가 너무너무 좋다"고 털어놨다.

이제는 대구 출신이 아닌 대구를 대표하는, 대구를 지키는 연예인 박규리로 남고 싶다는 그녀는 "3집 타이틀 곡이 ‘너는 쿵 나는 짝’인데, 우리가 모두 ‘쿵 짝’을 잘 맞춰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부른다. 목숨 걸고 알리는 노래 많이 사랑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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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수 기자

    • 배준수 기자
  • 법조, 경찰, 대학, 유통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