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통일신라때 제작 추정
높이 39.5㎝···국내 최대 크기
보존상태 좋아 학계 관심 집중

출토된금동여래입상
영덕 유금사 3층 석탑(보물 제674호) 보수를 위한 정밀 발굴조사 중 9세기경에 제작된 국보급 금동여래입상 2구가 출토됐다.

이 여래상은 탑의 북쪽 유금사 초창기 금당지 남서쪽 가장자리에서 나왔다.

영덕군은 재)삼한문화재연구원(원장 김구군)에 의뢰해 병곡면 금곡리 838번지 유금사 3층 석탑 이전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올해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조사했다.

이 조사는 유금사 경내 있는 3층 석탑이 틈이 벌어지고. 한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이를 해체·이전 복원하기 위해 이뤄졌다.

발굴조사 결과 현 석탑의 북쪽에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초창기 금당이 조사됐다.

특히 발굴지의 남동쪽에서 금동여래입상 1구와 호신불금동여래입상 1구가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조사결과 유금사는 3단으로 축대를 쌓고, 위에서부터 차례로 강당, 금당, 탑을 세운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산지 가람임이 확인됐다.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추정되는데 출입시설(계단)과 답도(딛는 도로)가 일부 확인됐다.

원 탑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금당지의 중심축에서 볼 때 조사지 외역에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3층 석탑은 원 탑지에서 약 5~6m가량 이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발굴팀은 밝혔다.
출토된호신불
출토유물로는 금동여래불상 2구가 출토됐는데, 완전한 여래불상은 높이가 39.5cm이며, 광배는 탈락 되고 없지만 전체적으로 상태가 온전한 편이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시무외인, 왼손은 내려 여원인을 하고 있다. 통견법의는 안에 속옷을 묶은 매듭이 있고, 통견은 전체적으로 ‘U’자상으로 흘러내리는 아육왕식의 주름이 음각 새김선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뒷면에 탕구 등의 구멍이 몸 전체에 뚫려 있고, 호상과 ‘U’자상의 통견법의의 음각새김 등으로 볼 때 9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9세기 초반에 제작된 금동여래입상은 경주 안압지 출토 금동여래입상(24,.7cm), 홍천 물걸리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22.6cm), 의령 보리사 출토 금동여래입상(26cm) 등 수 점에 불과하다.

이번에 발굴된 금동여래입상은 9세기 전반 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가운데 가장 큰 입상으로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금사통일신라시대가람배치구조
크기와 보존 상태, 미학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알려진 여래입상 가운데 가장 우수한 예술작품으로 지정문화재로 가치가 매우 높다고 발굴팀은 밝혔다.

발굴팀은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원 탑지를 찾고 강당과 금당지의 전체모습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주 외역에 건립된 8~9세기 산지가람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주요한 유적이므로 현 조사범위 외역에 대한 정밀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길동 기자
최길동 기자 kdchoi@kyongbuk.com

영덕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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