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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호서대교수·법학박사

자고로 제도는 목적이 있고 설치자, 구성원, 이용자가 있다. 제도를 설치하면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신분이 생긴다. 이것이 제도론자들 논의의 최대공약수이다. 이 논의에서는 제도 설치의 목적의 합리화를 위해 신(神)을 투영한다. 즉, 배후에는 신의 섭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제도론은 기독교적 사회주의에 빠지기 쉽다. 기독교적 사회주의에는 여러 가지 흐름이 있지만 유력한 것은 바로 신분론이다. 사람들은 사회적 기능분담을 각자의 신분에 맞게 수행한다고 설명한다. 다른 말로 유기적 사회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직능대표나 직능사회주의론에 붙잡힐 수 있다. 그중 한 가지 흐름이 파시즘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뭐든지 해주겠다는 생각이 바로 파시즘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밥, 옷, 돈, 심지어 직장까지 주겠다고 한다. 제도를 오로지 아날로지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면 개혁은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권력자들은 명심하라. 구체제의 완전한 청산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사람은 자연상태에서 누구나 동일한 자연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연권 사이의 조정을 실시하는 국가가 등장하면서 불가피하게 신분이 생겨났다. 또한, 자연권 상호 간의 충돌로 오히려 각자의 자연권의 확실한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벌거숭이의 자연상태를 벗어나서 형성된 시민사회는 정치적 공동체로 존재하는 사회이지 평등한 경제공동체가 아니다. 시민사회는 어디까지나 일원적 질서인 국가의 한 가지 편린에 불과하다. 우리는 유난히 시민사회를 강조한다. 시민사회는 국가 위에 초연하게 우뚝 솟은 것이 아니다. 국민이 모여서 형성된 국가의 주권 아래에 내장된 하부의 존재에 불과하다. 시민사회 눈치 보며 적폐청산을 외치지 말아야 한다.

법은 언어, 풍속, 예술 등과 함께 민족정신의 산물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법의 권위에 우월하는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이 서로 방해하는 일 없이 공존하기 위해서 법이 필요하다. 법은 각자에게 다른 사람의 의사(意思)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사물을 지배할 수 있는 독립의 영역을 부여한다. 자기 자신의 인격은 타인 지배의 대상이 되는 외계적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격은 외계적 대상에 대한 모든 지배권의 기초이다. 그 때문에 인권 내지 인격권을 소유권이나 채권보다 우위에 나열하는 것이다. 타인의 지배는 어떤 일을 하거나 물건을 급부하는 등 타인의 행위에 대한 것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 전형은 고용관계에서 고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지배이다. 민법과 상법의 전 영역에서 법은 모두 개인의 이기적 목적을 섬기는 것이며, 권리자의 욕구충족이 이들 사법(私法)의 지상 목적이다. 하지만 공법(公法)은 국가권력인 공권 그 자체 즉,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다. 공권력의 제1의 의무는 국민의 인권을 국가와 사회적 권력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과 기업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개인은 공동체에 복종해야 한다. 국가는 각각의 국민 위에 존재하고 그들의 상위에 있는 고차의 질서를 형성하는 통일적이고 자립적인 기구이다. 요컨대, 국가는 국민을 지배하는 권력이다. 여기서 공권력의 근거인 헌법은 그 제정권력자인 국민에 의해서 창출된 통치기구를 의미한다. 국가는 객관적 관점에서는 법질서인 단순한 제도로 나타난다. 제도는 국가의 법질서의 발현인 것이다. 입법은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구속력을 갖는 일반적인 진리나 원리를 표현할 수 있다. 입법할 권리는 주권자에게 귀속한다. 사람들은 주권을 어떤 구속도 존재하지 않는 전능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 주권자의 사상에 부착된 자의(恣意)가 법률의 내용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마왕적 국회가 적폐청산을 가로막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도 문제이지만 마왕적 국회는 더 큰 적폐다. 아우 지방의회도 여의도 형을 닮아가고 있다. 청산이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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