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최악의 가뭄 경북 동해안 덮치다
하루하루 ‘물과의 전쟁’···벼 농사 포기하는 농가 속출
포항·경주 등 일부지역 생활·공업용수 공급도 ‘비상’
영천·운문·성주 등 경북 주요 댐 저수율 20%대 진입

폭우,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난 중부지방 및 경북 북부지역과는 달리 마른 장마가 계속된 경북 동해안은 최악의 가뭄으로 농민들의 마음이 타들어 가고 있다.

40년만 극심한 가뭄에 제대로 된 비가 내리지 않자 저수지는 하루하루 바닥을 보였다.

지난 18일 기준 도내 저수율이 53.7%로 평년 65.0%보다 여전히 낮은 상황으로 영천댐 29.8%, 운문댐 29.0%, 성주댐 29.4% 등 주요 댐 저수율이 20%대에 진입, 평년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포항지역은 3개월 앞뒤 농업용수 전망치가 가뭄 주의단계이며 경주 역시 생활 및 공업용수 가뭄이 1개월 전망 주의단계에 있어 가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4일 포항시 남구 대송면 장동3리 조광욱 이장이 메마른 논에서 물부족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벼를 둘러보고 있다. 정승훈 기자.
△포항시 남구 대송면

“최악의 가뭄이었다는 1994년 당시에도 지금보단 나았어요. 봄부터 지금까지 가물다 보니 계곡 물이고 우물물이고 다 말라버리고 동네에 아예 물기 자체가 없어요.”

금이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는 모가 누렇게 시들고 있었고, 곳곳에 잡초만 무성히 솟아났다.

24일 포항시 남구 대송면 장동3리 조광욱(65) 이장은 메마른 논 여기저기를 살피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올해 대송면 지역에서 심은 벼품종인 ‘삼광’과 ‘새누리’는 80㎝ 이상 자란다.

예년 이맘때라면 키가 70㎝는 됐을 이들 모가 지금은 그 절반 수준인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장동3리 일대 조 이장의 논 2만 9천여㎡에 심은 모 대부분은 이처럼 생육부진이 극심했다.

모내기 이후 제 때 제초제를 뿌리지 못한 탓에 잡초도 유난했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왕성한 논 잡초를 방제하기 위해서는 제초제를 뿌린 후 물을 3~5㎝ 깊이로 일주일 가량 유지해야 하지만 유례없는 봄 가뭄에 진작부터 논에 물이 말랐기 때문이다.

인근에 대형 저수지나 지하수로가 없어 주로 관정에 의지해 농사를 지어온 대송면 장동2·3리, 홍계리에는 농사를 이미 포기하다시피 한 이들이 많다고 조 이장은 설명했다.

먹을 물조차 없어 슈퍼마켓에서 생수 묶음을 사고, 지인의 집에서 물을 받아 트럭으로 실어다 쓴다고 조 이장은 덧붙였다.

조 이장은 “이달 말까지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이삭이 제대로 패지 않아 올해는 쌀 한 톨 건지기도 힘들 것”이라며 “많은 마을 주민들이 농사는 접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고 한탄했다.

장동1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상문(83) 씨의 논에는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얕게나마 물이 차 있었다.

인근 관정에서 물을 끌어온 덕이지만 지하수가 언제 마를 지 걱정할 만큼 체감하는 가뭄은 비슷했다.

김씨는 “관정에 댄 양수기 7~8대 중 딱 한 대만 돌아간다. 5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이만큼 가물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 24일 포항시 북구 청하면 소동리의 한 논에서 자란 벼가 노랗게 타들어가고 있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포항시 북구 청하면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포항시 북구 청하면 소동리에 벼 농사를 짓는 김왕수(52)씨는 논 바닥이 쩍쩍 갈라진 논만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3달째 비 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하천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이렇다 보니 물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모는 말라죽기 직전이다.

24일 역시 한참 비가 쏟아 질 듯 천둥만 요란스레 치고 정작 비는 몇 방울 내리는 것에 그쳤다.

비 소식에 한 달음 달려온 농민들은 도로도 채 적시지 못한 강수량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집중호우, 장마 등 비 소식은 전혀 다른 세상 얘기일 뿐이다.

논두렁을 따라 만든 콘크리트 농수로는 언제 물이 흐른 지 모를 정도로 바짝 말랐다.

인근 저수지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끌어올 물마저 끊기자 농민들은 더 이상 손쓸 길이 없어졌다.

비가 쏟아져 가뭄이 해갈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자 논을 찾는 발걸음마저 뜸해졌다.

워낙 가뭄이 심하다 보니 잡초라도 있어야 논이 덜 마른다며 풀도 더 이상 베지 않아 논둑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랐다.

김씨는 “매년 이맘때면 논에 물 대려던 농민들로 북적였는데 물이 없으니 논에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예년 같으면 나란히 심은 모가 자라 푸른 물결이 일어야 할 논은 곳곳에 검게 죽어가고 있고 심한 곳은 노랗게 말라 죽었다.

일부 논 주인은 빨리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지 마른 논에 물 대는 것도 포기한 듯했다.

인근 신흥리에서 만난 70대 농부는 “지금이 제일 논에 물이 필요한데 이제는 비가 와도 늦었다”면서 “어찌어찌 벼 이삭이 패도 껍데기만 남아 벼가 고개를 안 숙일 것”이라며 걱정했다.

경주시 양북면사무소가 가뭄으로 말라버린 논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대종천에 관정을 개발하고 있다.
△경주시 양북면

“한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심한 가뭄은 처음입니다. 말라가는 논바닥을 볼 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24일 오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원당들에서 만난 차유환(68) 씨는 구릿빛 얼굴에 걱정 어린 모습으로 한창 벼가 자라고 있는 자신의 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약 7천㎡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 차 씨는 벼이삭 수잉기를 맞은 논에 집중적으로 용수를 공급해 줘야 하지만, 오히려 논바닥 곳곳이 쩍쩍 갈라지고 있어 가슴이 타 들어가고 있다.

가뭄이 장기화 되면서 인근에 위치한 대종천은 물론 소규모 저수지의 물도 벌써 오래전에 고갈돼 농업용수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별다른 농업용수 확보방안이 없어 하늘만 바라보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다행히 양북면사무소에서 대종천에 우물 관정을 개발키로 하고, 23일 오후부터 중장비 4대를 동원해 굴착작업을 벌이고 있어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 본다.

이처럼 경주지역의 가뭄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 부족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는 등 가뭄극복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내달 10일까지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7만t 이하 저수지 224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5개가 말라버리고, 시들음 피해를 입는 벼작물도 450ha로 급속히 확산하는 등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현재 경주지역은 지난 21일 기준으로 누적강우량이 217.4mm로 평년의 38.1% 수준에 불과하고, 6월과 7월 강우량도 47mm에 그치면서 저수율도 35.1%로 농업용수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외동읍, 서면 등 경주 대부분 지역에서 하천수 등 보조양수장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으나, 이마저도 수원이 부족해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서면 지역의 경우 지난해 저수지 보강공사를 하면서 물을 제대로 가두지 못해 인근 봉덕들의 벼작물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외동읍의 주요 곡창지대인 토상지구도 지난 6월초 모내기 후 토상저수지가 고갈돼 몽리면적이 142ha인 제내, 냉천, 북토리 일부지역에 용수가 부족해 논마름 현상이 발생한 상태다.

이와 함께 양남면 신대리, 효동리와 건선읍 송선리 등 경주지역 10여 개 마을에는 지하수가 고갈되면서 경주시와 소방서에서 급수차를 동원해 생활용수를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주시는 가뭄극복을 위한 관정개발, 하천굴착, 다단양수, 살수차 동원, 저수지 준설 등을 위해 지금까지 120억여 원을 투입했다.

최양식 시장은 “가뭄이 지속되면서 지하수나 지표수를 사용하는 일부 마을에서는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생활용수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상습적으로 장기화되고 있는 가뭄 극복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제한된 수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 할 수 있는 다양한 절수방안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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