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국 고문헌 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25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대만학자 남회근(南懷瑾·1918-2012)이 지은 한시를 읊어 화제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이런 돌발행동을 한 것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임 검찰총장이 이 한시를 대통령 앞에서 읊조린 복심(腹心)은 과연 무엇일까?

검찰 쪽에선 각계로부터 개혁을 요구 받고 있는 현재의 검찰의 어려운 입장을 대변한 것이라는 설명인가 하면 다른 쪽에선 문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여 국정 수행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것을 칭송하는 뜻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고들 하고 있다.

‘하늘이 하늘 노릇하기가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고, 집을 나선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고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는데,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하늘을 바라네’

신임총장이 대통령 앞에서 읊은 남회근의 한시다.

남회근의 이 한시는 중국 농요(農謠)를 다듬어 지은 책 논어별재(論語別裁)에 실은 것으로 이 시를 두고 대만과 중국의 식자층에서도 서로의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해석을 한 사례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3월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사건이 불거졌을 때 외부로부터 보이지 않은 압력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검찰 간부들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빗대 이 한시를 읊은 일이 있었다.

신임 검찰총장이 외부로부터 각종의 개혁 요구를 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이 한시를 읊었다면 검찰총장으로서의 기개와 앞으로의 검찰 독립성의 단초를 보였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러지 않고 검찰총장직에 임명해준 대통령의 ‘성은(?)’에 화답하기 위한 찬사의 노래였다면 앞으로 검찰의 독립은 요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검찰 인사는 청와대가 좌지우지를 해왔다고 해도 별반 틀리는 말이 아닐 것이다.

지난 5월 15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에게 회식한 후 돈 봉투를 돌린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이들을 지방 검찰청으로 문책성 좌천 인사를 한 후 지난달 7일 자로 면직을 시켰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창재 법무부 차관과 김주현 대검차장도 함께 옷을 벗었다. 이로 인해 검찰의 ‘빅4 자리’가 공석이 되었으나 그사이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 중앙지검장 등 요직에는 부분적으로 인사가 이루어졌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의 인사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 가운데 서울중앙지검장에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수사팀으로 있던 윤석열 대전고검검사를 파격적으로 임명했다. 이때 이창재 법무부 장관 대행이 윤 검사를 임명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이 장관 대행은 윤 검사를 임명한 그 날 곧바로 사표를 냈었다.

이런 와중에 최근 검찰총장에 임명된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임명장을 받는 대통령 앞에서 듣기에 따라 달리 해석을 할 수 있는 남회근의 ‘4월의 하늘’ 한시를 읊었으니 법조계 화제가 되고도 남을 만한 것이다. 이왕 내친김에 문 신임 검찰총장은 청나라 말기 나라가 폐망 직전에 놓인 것을 보고도 방관만 하고 있던 지식인들을 질타하는 글을 쓴 청의 사상가 양계초(梁啓超·1873-1929)의 ‘방관자를 꾸짖노라’라는 글을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검찰의 위상이 건국 이래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은 이때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검사들이 개혁에 동참하여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검찰상을 세워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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