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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인류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엔 세 종족이 살았다.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 삼 형제의 이름을 따서 셈족, 함족 그리고 야벳족이라고 불렸다. 셈족은 노아의 장남 셈의 후손으로 아라비아 민족의 조상이고, 함족은 차남 함의 자손으로 아프리카 북동부 사람들의 선대이다. 또한 야벳족은 삼남 야벳의 후예로 인도유럽어족 혹은 아리아족의 선조이다.

일부 학자는 이들 세 종족을 황인종·흑인종·백인종의 원류라고 말한다. 십계의 모세나 솔로몬 왕은 셈족의 후대이고, 거개의 미국인은 야벳족의 아랫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조상일진대 기후와 환경에 따라 피부색과 외모가 변한 듯싶다.

색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을 만든 것은 우리들 상상력이다. 어떤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형성됐다. 흑인과 백인을 대하는 인식의 차이도 그러하다. 똑같은 영혼과 붉은 심장을 가진 존재임에도 은연중 선입견으로 차별을 행한다. 순전히 주관적 판단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과오의 전형이다.

미합중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영부인 미셸도 토로했다. 백악관 생활 중 가슴 아팠을 때가 백인 고위 공직자의 흑인 비하 발언이었다고. 자신을 원숭이에 비유한 독설을 지워 비리고 싶은 기억이라 고백했을 정도다.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빈정거림이 이럴진대 장삼이사야 오죽하랴.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유명한 해양 소설이다.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무인도에 표착한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면서 다시 귀환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데 그는 왜 바다로 나갔을까. 노예무역을 하고자 대서양에 나갔다가 표류한 내용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스무 살 때 집을 나와 대양의 매력에 빠진 로빈슨은 두 번째 출항을 나갔다가 해적에 붙잡힌다. 간신히 포르투갈 노예선에 구출된 이후 브라질로 건너가 농장 경영에 성공한다. 당시 일손이 부족한 농장주들은 노예무역 경험이 있는 그에게 검은 인간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응하고자 해항했던 것이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의 세계사나 미국의 역사서를 보면 흑인 노예의 비극이 처절하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흑인 노예와 설탕 플랜테이션으로 연결되는 대서양 삼각무역으로 국부를 축적했고, 세계 경제를 장악하는 자본주의를 꽃피웠다. 아프리카 서안에서 노예를 구입한 후 카리브나 신대륙으로 운송하여 설탕과 면화를 교환하고, 이를 유럽으로 가져가는 방식. 노예의 삼분의 일은 운송 도중에 죽었다고 전한다.

버지니아 대학의 허쉬 교수가 지은 미국의 초등생 역사 교과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그 공민권 운동에 관해서 상당한 분량을 다룬다. ‘노예들이 저항한 방법’이란 소단원엔 흑인 영가를 소개한다. 영가는 흑인들이 불렀던 일종의 찬송가로서 재즈의 전신이기도 하다. 더구나 흑백 차별은 대명천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으니 아이러니다.

재즈는 흑인의 슬픔과 오한이 촉촉한 음악이다. 엄밀히 말하면 블루스·영가 같은 흑인의 음악과 클래식·행진곡 같은 백인의 음악, 남미의 리듬이 뒤섞였다. 그래도 재즈의 본류는 흑인 음악이다. 유명 재즈 뮤지션은 모두가 흑인임을 봐도 그렇다. 수백 년간 계속된 옥죄인 삶은 한탄과 체념이 어렸다. 재즈엔 야성적인 흑인의 선혈이 흐른다. 격정적인 리듬과 몰아치는 비트는 재즈의 자유를 향한 포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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