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엔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부푸는 얼음장에 박힌 피 한 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것만 같고

이 돈을 그에게 전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그러니 이 돈은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 되는 이 돈을 잘 전해주시길




감상) 도로 가에 쓰러진 길고양이 시체를 볼 때면 그러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쓰러져 있었던 것 같은, 누군가는 침을 뱉으며 사라졌고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며 피해 갔고 누군가는 묵념하듯 한참을 바라보다 지나가기도 했던 나의 시체. 내가 어떤 순간 앞에서 그러했듯 누군가도 나를 그렇게 스쳐간 적 있었던 것 같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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