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버너로 추위 견디며 끼니 해결

24일 오전 대구 북구 칠성동 쪽방에 사는 시각장애6급 정모(57)씨가 수은주가 영하 12℃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에 방 안에서 가스버너로 물을 끓이면서 추위와 맞서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kyongbuk.com
‘영하 12℃’. 24일 오전 11시 50분 한파주의보 발효 문자를 받고 확인한 수은주다. 매서운 동장군의 면모 그대로였다.

오후 2시. 대구 북구 칠성동 주민자치센터 인근 판잣집 같은 쪽방촌은 내·외부 온도 차이가 거의 없었다. 강력한 냉기가 온몸을 때렸다.

매달 7만 원으로 4.3㎡(약 1.3평) 짜리 보금자리에 둥지를 튼 서모(64)씨는 전기장판과 이불 한 장을 휘두르고 벌벌 떨고 있었다. 방패막이 삼았던 기름보일러가 무용지물이 돼서다. 그는 “달랑 7만 원 내면서 보일러 고쳐달라고 요구할 엄두가 안 난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주인이 집을 고칠 생각도 없다”고 털어놨다. 기초생활수급비 60만 원으로 생활하는 서씨 등 달방 거주자 4명은 동파 걱정이 없는 재래식 공동화장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얼어붙은 수도꼭지 때문에 세수와 샤워는 건너뛰기 일쑤다. 서씨는 “겨울에는 한증막 같은 더위가 없어서 일회용 가스버너로 라면도 끓일 수 있다. 무료급식소와 번갈아 하루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유일한 낙이다”라면서 웃었다.

여인숙을 개조한 칠성시장 근처 쪽방 거주자 정모(57)씨의 사정은 더 심각했다. 12만 원 짜리 달방이지만, 서씨의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6급 시각장애인인 그는 한파에 수도관이 얼어붙은 탓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어서 대구역 역사 화장실을 오가는 게 고통이라고 했다.

정씨는 “서울 종로 여관 방화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는데, 나 또한 너무 두렵다”면서 “불이 나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서씨 또한 “방안에서 가스버너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아 겁이 난다”라면서 “왼발에 동상까지 걸린 나는 화재에 완전한 무방비 상태”라고 한탄했다.

실제 이날 찾은 두 곳의 쪽방은 화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주민센터 옆 쪽방촌의 경우 복잡하게 얽힌 전기배선 옆에 나무판자로 덧댄 처마, 테이프로 뒤덮은 창문 등 악조건 그 자체였다. 소화기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미로같이 복잡한 구조의 쪽방촌은 비상 시 대피도 더 어렵게 한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소방서에서 달아준 화재감지기라도 있다는 것이다.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정씨 등과 같은 조건의 쪽방 거주자가 1천311명에 달한다. 한파와 화재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행정기관은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도움의 손길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북구청은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맞춤형 복지팀을 가동하고 있지만 제한된 인원과 지원금 때문에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칠성동의 경우 서씨와 같은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만 500여 세대지만, 고작 7명의 사회복지사가 도움을 주고 있을 정도다.

이종혁 사회복지사는 “올해는 유독 쪽방촌 주민들의 겨울나기가 힘이 든다”면서 “이들의 마지막 희망이자 안식처인 쪽방촌 주민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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