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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원장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겪을 때 반응하는 방법들은 개인마다 너무나 다르다. 정신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들은 이런 위기를 탄력 있게 견뎌내지만, 마음이 약하거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위기를 잘 해결해 내지 못하여 결국 마음의 병이 생기기도 한다.

큰 위기나 급작스러운 스트레스를 겪을 때 아주 미숙하거나 매우 병적으로 반응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해리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해리 현상이란 평상시 잘 통합되어 있던 개인의 기억, 정체감, 의식, 지각 기능 등이 위기를 만나면 붕괴되어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위기에 이런 해리 현상을 자주 사용 하는 병을 ‘해리장애’라 한다.

해리현상 중 가장 흔한 것이 바로 기억을 상실하는 현상이다. 이를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 한다. 이때의 기억상실은 특별한 트라우마나 스트레스에 대한 선택성 기억 상실이며 다른 내용은 기억에 잘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이 기억상실에 더불어 자신의 정체감과 과거를 지워 버리고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는 현상을 ‘해리성 둔주’라고 부른다. 이 해리성 둔주는 매우 드라마틱하여 끝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

해리 현상 중 드물지만 매우 독특한 현상으로 다중 인격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바로 그것인데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 부른다. 즉, 내 안에 다른 인격을 가진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인데, 보고에 의하면 22가지의 다른 인격을 가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흘러간 헐리우드 영화 중 한 장면이 생각난다. 시카고에서 존경받는 카톨릭 대주교가 어느 날 피살 된다. 현장에서 19살의 소년용의자가 도망치는 장면이 TV에서 중계되고 이를 지켜보든 잘나가든 변호사 K가 그를 무보수로 변호할 것을 결정한다. 그 소년의 이름은 ‘애런’이었다. 상대방 검사는 변호사 K의 동료이자 전 부인인 L이 맡게 되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피살자의 피가 묻은 애런의 옷과 운동화를 확실한 증거물로 제시하여 그의 범죄가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음에도 애런은 그 당시 기억을 전혀 못 할 뿐만 아니라 현장에는 또 다른 3자가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승소에 자신 없던 변호사 K가 은밀히 애런의 범죄를 다그치는 과정에서 애런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자 갑자기 전혀 다른 인격체인 ‘로이’라는 인물로 바뀌어 버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 로이는 매우 거칠고 공격적이며 폭력적인 성격으로 애런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대주교를 살해한 범인은 바로 이 로이라는 인격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제 법정에서 증명할 일만 남았다고 쾌재를 부른 변호사 K는 판사 앞에서 애런에게 범죄를 다그치는 검사 L의 자극적인 말에도 전혀 제동을 걸지 않았다. 급기야 격한 스트레스를 받던 애런이 갑자기 로이로 변하게 되고 이 로이가 난동을 부리면서 검사 L의 목을 조르게 되는 공격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 다중 인격이 나타나는 현상을 직접 목격한 판사는 애런에게 무죄를 선고하게 되고, 잘나가던 변호사 K는 또 하나의 승소의 경력을 쌓게 된다.

이 다중 인격을 나타내는 해리 현상은 일종의 장기간의 감정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병으로 설명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많이 노출된 아동들에게 이런 극단적인 해리 현상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반전이 있다. 무죄 판결을 받은 애런이 변호사 K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검사님 목에 상처는 괜찮은가요”하고 묻는다. 다중 인격에서 각각의 인격체는 서로가 한 행동을 모른다고 하는데 애런이 로이가 한 행동(검사 목을 조른 행동)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극적인 반전을 주고 영화는 끝난다. 다중인격은 임상에서는 그리 흔한 병은 아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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