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7월 3일 대한민국 '떠들석', 중화학공업 시대 힘찬 개막 한 발짝
‘보라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꽃 / 여기는 잠자지 않는 일터 / 地軸을 흔드는 우렁찬 소리 / 파도보다 더 높은 젊은 의욕 / 우리는 땀과 양심과 성실을 바쳐 / 새 역사의 바퀴를 떠밀고 간다 / 조국과 인류의 영광을 위해’
1973년 7월 3일 마침내 영일만에서 연산 103만톤 규모의 종합제철 공장이 준공된다.
또 설비 가동 1년 만에 당시 투입된 외자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242억원의 흑자를 시현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적자도 없이 흑자 전통을 지켜와 자체자금으로 계속되는 확장사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초기 제철소 건설요원들이 공기를 단축해 건설비를 낮췄으며 설비와 원료를 싼값에 구매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또한 일찌감치 해외연수를 통해 자체 기술요원들을 훈련시킨 결과 1기 설비를 자체 기술진의 힘으로 가동했다. 무엇보다 모든 포스코인이 제철보국의 의지와 사명감으로 뭉친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포스코는 기본적인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포스코는 우리나라 경제사에 획을 긋는 영일만 1기 대역사를 일단락 짓고, 쉴 틈도 없이 다시 세계 최고의 제철소로 성장하기 위한 대장정에 나섰다.
지금 ‘포스코’라는 사명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글로벌기업 POSCO의 사명이 PISCO가 될 뻔 하기도 했다.
정명식 포스코 전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그는 포항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된 1973년부터는 국내외 VIP급 내빈들의 제철소 방문이 잦아지자 임원으로서 상황실 영접을 주로 맡았다. 정 전 회장은 외국인 VIP에게 영문 상호 ‘Pohang Iron and Steel Company Ltd.’라는 기다란 명칭을 쓰기가 까다로워 ‘POSCO’라는 약칭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영문회사명의 이니셜을 그대로 따면 ‘PISCO’가 되는데, 그는 포항에 있는 제철소인 만큼 ‘포항’의 ‘포’를 살리고 싶어서 ‘POSCO’로 한 것이 지금의 공식 회사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