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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전개된 한반도 정세를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겨울만 해도 언제 전쟁이 터질까 불안 불안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숨 가쁘게 돌아가던 한반도 정세는 김정은-트럼프 회담으로 이어지고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외세의 농간의 휘말려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른 민족이다. 전쟁을 경험한 탓에 전쟁하면 치가 떨리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이 많다.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면 덩달아 마음 한 켠이 불안해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파도가 밀려온다.

전쟁, 그것도 동족 간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그 삶이 얼마나 처참한가. 잘 태어나고 잘 살고 잘 죽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사람이 태어났으면 자아실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전쟁은 자아실현의 꿈도 목숨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전쟁 통에 부상당한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한 번 다친 몸은 회복되지 않는다. 누가 왜 다쳤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없다. 오로지 본인만이 알고 본인만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고통이다. 국가가 제대로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전쟁에서 다친 사람에게 지급하는 연금은 아주 적다.

전쟁에 참전해서 다쳤음에도 공식 기록을 통해 입증하라 한다. 국가가 군 생활 중 부상당한 사람을 기를 쓰고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부상당한 사람에게 사실을 입증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갔는데 국가가 사실을 확인한 뒤 합당한 예우를 하거나 명예로운 삶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참전한 사람이 스스로가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심정이 어떨까.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99.99%의 전쟁은 무가치하다. 전쟁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문제가 아니고 상대가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데 상대는 평화를 파괴하는 세력이라고 말한다. 나는 훌륭한데 상대는 형편없다는 말이다. 절대 선, 절대 악을 주장하는 한 평화는 불가능하다.

전쟁, 특히 현대전은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모두가 지는 게 전쟁이다. 전쟁에 이긴다 한들 남은 건 잿더민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겠다는 것인가. 어떤 나라가 전쟁을 막기 위해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다 치다. 그러면 상대방도 살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요것 봐라’하면서 무력을 더욱 강화한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연쇄 군비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침략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무장은 필요 불가결하다. 하지만 상대방을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무력을 대폭 강화하는 노선으로 가는 것은 두 나라와 주변 나라의 민중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준다. 복지 재정이 줄어든다. 가정 경제는 그만큼 악화된다. 전쟁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지고 각국 민중들끼리 적대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전쟁광들은 그걸 이용하여 전쟁을 벌여 사익을 추구한다.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평화의 경로’는 사람 수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은 안 돼!’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적으면 평화는 위태롭다. 전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평화는 깨진다. 이 나라 저 나라에 전쟁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득세하게 되면 전쟁은 임박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반대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도 저 나라에도 넘쳐난다면 전쟁이 나기 어렵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쟁을 벌이려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화해, 북미화해를 위한 지도자들 간의 회담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 그리고 통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뭉쳐서 함께 외쳐야 한다. “평화는 오고 전쟁은 가라!”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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