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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의기소침한 내게 그가 건넨 말이다. 잔치국수나 먹으러 갈까,

이론적으로 밝혀보자면 국수는 다량의 탄수화물로 구성되어 있다. 탄수화물은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체내에 흡수됨으로써 에너지 생성에 관여하게 된다. 이때 생성되는 에너지는 엔돌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포도당은 우리 몸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가솔린 같은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국수는 엔돌핀 생성에 관여하는 좋은 음식이며 곁들여 먹는 고명에 따라 또 다른 영양까지도 챙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울적해진 기분을 달래주는 최고의 음식으로 잔치국수를 꼽는다.

잔치국수는 주식보다는 새참이나 밤참의 주 메뉴였다. 멸치와 다시마 등 갖은 재료들을 넣고 푹 우려낸 육수에 금방 삶은 국수를 말아, 양년 간장 한 숟가락을 얹어 먹으면 그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고명이랄 게 별로 없었다. 채전 밭에 있던 부추를 데쳐서 얹어 먹는 게 전부였고 김치를 잘게 썰어 걸쳐먹기도 했다. 요즈음 국수집에 가면 계란지단이나 어묵을 얇게 썰어 얹어주는 집도 있고 김 가루를 뿌리고 노란 단무지를 얹어주는 집도 더러 있다. 어릴 적 내가 먹었던 국수에는 양파를 볶아서 얹어 먹곤 했는데 그것은 우리 집만의 특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국수에 달착지근하게 볶은 양파를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한다. 양파는 피를 맑게 하는 성분이 있으며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기능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혈압에 좋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며 간 기능 강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수 맛을 가장 좌우하는 것은 이러한 고명들이 아니라 국물이다. 어떤 멸치를 쓰고 어떤 재료들을 넣어 우려내느냐에 따라 그 맛은 달라진다. 물론 그 재료를 넣는 방법에 따라서도 국물 맛은 달라질 수 있다고 들었다.

우리가 어떤 음식에 추억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을 먹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 먹어 본 많은 것들은 문득문득 그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그것을 만들어 주던 사람이 없고 그것을 먹던 때와는 다른 먹거리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혀끝에 침을 돌게 한다. 더러는 아픔으로 더러는 행복함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추억 중 음식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사람마다 위안을 얻는 방식은 다르다. 여행이나 좋은 음악, 책 같은 것들과 더불어 맛있는 음식 역시 위안을 얻는 한 가지 방식일 수 있다. 혀끝에 침을 돌게 하는 인간의 반응은 여러 가지 효과를 불러낸다. 침은 구강 내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 외에 소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긴장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침이 바짝 마르는 경험을 해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침이 분비되는 현상은 그 외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음식을 생각할 때 입 안에 침이 돌게 된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는 즐거운 기전에 돌입하게 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잔치국수나 한 그릇 먹으러 갈까, 기분이 우울할 때 내가 나에게 건네 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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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김선동 kingofsun@kyongbuk.com

인터넷경북일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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