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이 탄생한 신화는 접어두자. 장미는 그 자체가 때론 하나의 상징이 된다. 15세기 중반 잉글랜드 랭커스터 왕조의 왕위 쟁탈전에서의 장미꽃 상징이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붉은 장미 문장(紋章)의 랭커스터 가문과 흰 장미의 요크가가 왕위 계승을 놓고 30년간 ‘장미 전쟁’을 벌인 것이다.

랭커스터 왕조의 무능한 헨리 6세는 아버지 헨리 5세와 외조부인 프랑스 국왕 샤를 6세가 죽자 아직 핏덩이인 한 살에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왕위에 올랐다. 나자마자 왕위에 올랐으니 왕권인들 제대로 지킬 수 있었겠는가. 예상대로 그는 신경쇠약으로 왕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는 백년전쟁의 패배로 프랑스 국왕 지위를 상실했다. 이렇게 해서 잉글랜드에서도 왕위 계승을 둘러싼 두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긴 전쟁 끝에 랭커스터 가의 헨리 튜더가 승리했다. 1485년 그는 헨리 7세로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 튜더 왕조를 열었다. 그는 두 가문의 화해를 위해 요크가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했다. 문장도 화합의 상징으로 붉은색과 흰색을 섞은 ‘튜더의 장미’를 내걸었다.

이렇게 장미는 역사 속에 정치색을 띠면서 자주 등장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4월 검찰에 소환되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들이 길바닥에 노란 장미를 던졌다. 노사모의 노란색 장미는 ‘정치 보복’이라는 상징 언어였다.

6일 댓글 조작 사건 주범인 ‘드루킹’과 공모 의혹을 받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특검 소환에 ‘장미꽃 길’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에 나서며 ‘안개꽃 응원’을 받은 지 5년여 만에 보인 정치적 상징이었다. 이날 오전 김 지사가 특검사무실 앞에 나타나자 지지자들이 분홍 장미를 던졌다. 분홍장미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 지사는 7일, 특검 출석 당시 지지자들이 자신에게 장미꽃을 던지며 응원한 데 대해 “가시밭길 위에 놓인 장미꽃, 그 꽃에 담아주신 마음들 가슴에 꼭 새겨 두겠다”고 말했다. 정치 특검이라는 것인지, 고난의 상징인지, 애정의 표현으로 해석해야 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특검과 김경수 지사와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특검 수사로 장미 꽃길의 결말이 명백히 밝혀져 법치의 표본이 되길 기대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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