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모르는 시민 대다수···조기게양 시민 참여율도 미비
민족문제硏 지자체 홍보 부족

경술국치일을 맞은 29일 대구 동구 한 아파트 단지 모습. 국기게양대에 조기를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다.
“오늘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한 경술국치일입니다. 각 가정은 조기를 달아 민족의 치욕스러운 역사와 민족의 정서적 경각심을 상기시키길 바랍니다”

29일 오전 대구 동구 한 아파트 단지에 경술국치일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조기게양 권고방송이 흘러나왔다.

앞서 하루 전에도 안내 방송을 했었으나 이날 아파트 단지 내 총 429세대 중 조기를 내건 세대는 20여 곳에 불과했다.

총 607세대가 거주하는 인근 아파트도 조기게양을 한 세대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기게양은 깃봉을 기준으로 태극기 세로 너비만큼 내려서 달아야 한다. 완전한 조기를 달 수 없는 경우 바닥 등에 닿지 않도록 최대한 내려서 달면 된다.

그러나 일부 세대에서 내건 태극기는 국경일·기념일의 게양 방식으로 매달아 조의를 표하는 의미와 어긋났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광복절 당시 90%에 달하는 주민이 태극기를 내걸었던 모습과 크게 비교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민족의 치욕적인 역사가 잊혀가고 있다.

경술국치(庚戌國恥)는 경술년에 국가적인 치욕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내각총리였던 이완용과 조선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순종황제의 반대를 무시하고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한일병합조약’을 통과시켰다.

당시 일본은 우리 민족의 저항이 두려워 발표를 유보하다 8월 29일 조약을 공포해 순종황제에게 나라를 넘기는 조칙을 내리도록 했다.

조약의 제1조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제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이다.

결국 대한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지고 되새기는 의미로 8월 29일이 경술국치일로 지정됐다.

대구는 지난 2014년 5월 29일부터 경술국치일에 조기게양을 하도록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례 제정 후 5년이 흘렀음에도 지자체를 포함한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만 조기게양을 시행할 뿐이다.

대구 각 구청이 지역 내 아파트와 주택 단지 동·통장 등 주민 대표를 통해 경술국치일 조기게양을 권고하지만, 주민들의 참여율은 미비하다.

경술국치일 조기게양이 주민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동구 주민 최모(55·여) 씨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이야기해봤는데 경술국치일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안내방송을 한 아파트도 있고 하지 않은 곳도 있고 제각각이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조기게양 참여율이 낮고 경술국치 의미조차 모르는 실정에 지자체의 홍보가 부족하다는 거센 비난도 나온다.

오홍석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장은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앞서 내부 매국노들의 좌상과 우리 민족의 나약함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며 “지자체가 경술국치일을 기억하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한 노력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치단체장들의 노력, 특히 교육감이 학생들에게 경술국치에 대해 교육을 하도록 방침을 내리면 아이들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시민들이 역사를 기억할 것”이라며 “조기게양을 권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홍보물을 나눠주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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