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한 공업도시는 옛말, 자연과 어우러진 도심 곳곳 사람 사는 이야기가 '솔솔'

박모니카 수필가

나는 외지에서 지인들이 찾아오면 맨 먼저 포항 공대를 데려 간다. 포스코의 위력도 보여 줄 겸 포항에서 배출한 인재들을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는 포항공대를 둘러 싼 숲길을 거닌다. 메타세콰이어의 행렬에 발맞추어 걷다 보면 정갈한 숲 속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정리되어 있는 숲은 가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읽게 한다. 잔디 깎인 구릉에서 몇 번씩 또르르 구르며 동심으로 돌아가 깔깔거리고 즐거워한다. 부덕사를 지나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사람을 졸졸 따라 다니는 연못으로 간다.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물고기와 사람과의 교감을 만끽한다. 공대 옆 숲 한 켠, 백로들의 서식지를 보여주면 포항에 거주하는 나를 몹시 부러워하게 된다. 사진으로만 보아 왔던 백로들의 날개 짓을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서 마음 놓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포항시 한복판에 이처럼 잘 가꾸어진 숲이 있음에 감탄을 한다.

내가 대구에서 포항으로 이사 올 때 모두들 포항을 오염된 공업 도시쯤으로 치부하며 안쓰러워했었다. 바닷가 사람들이라 거칠고 야박할 거라고 미리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포항은 살아 볼 수록 정이 드는 곳이었다.

'신라의 달밤'인 경주에는 역사가 있지만 '포항의 달밤'에는 서사(敍事)가 있다. 포항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희망'인 서정(抒情)이 담긴 이야기들. 용흥동에서 우창동까지 걸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황량했던 폐철도가 향내 나는 숲길로 확 바뀌어 있음을. 이런 일을 추진한 시 관계자의 발상이 유쾌하다. 밤에 폐철도 부지를 걷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무서움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었다. 음침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밝고 환해서 동네 분들이 밤늦은 시간도 잊은 듯 나무 등걸 의자에 앉아 혹은 걸으면서 사는 이야기를 넉넉하게 나눈다. 나도 산보 삼아 달빛 타래 몇 가닥 만지작거리며 느긋하게 달밤을 거닌다. 서사가 있는 숲길이 어디 이 곳 뿐일까. 포항은 자랑할 곳이 많은 도시다. '복이 저절로 굴러 오는 숲길'도 장성동에 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심 속에 맑은 바다가 있다는 것은 기적 같다. 태평양에서 밀려 온 파도가 있고 수십억 년 전의 물결이 여전히 출렁이는 곳. 그 곳에 휘영청 달. 경계가 사라진 밤바다와 하늘을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정자(영일대)에 걸터앉아 바라다본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밤바다에 떨어져 있는 별들을 주우러 가고 싶어진다.

해안선을 따라 환여동 끝까지 걷기를 즐긴다. 특히 달밤이 좋다. 밤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그 촉감에는 묘한 느낌이 있다. 그럴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색소폰 소리, 밤 하늘이 음표로 가득하다. 마음이 흔들린다.

포항이 아름답다.

해가 진다

사랑해야겠다

해가 뜬다

사랑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너를 사랑해야겠다

세상의 낮과 밤

배고프며 너를 사랑해야겠다

(고은의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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