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 인간의 기본 권리를 찾고 참 자유를 누리는 삶 돼야

김기포 기계중앙교회 목사

'노예 12년'은 그 주제의 강렬함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2014년 아카데미작품상을 수상했다. '노예 12년'은 영화 같은 실화이며 한순간에 노예가 된 너무나 혹독하고 가슴저린 영화다. '노예 12년' 그 기간은 자유를 납치당한 한 흑인 남자의 기록이다. 백인들의 횡포는 한 인생을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넣었고 또한 그의 단란한 가족마저 생이별로 갈라놓았다.

1840년대 미국은 노예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다. 흑인은 물건처럼 매매된다. 흑인은 백인의 자산이고 소유물이다. 솔로몬 노섭은 자유인으로 태어나 뉴욕 주 사라토가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삶을 누리던 바이올린 연주가였다. 1841년, 공연을 제안 받아 가게 된 워싱턴에서 사기, 납치를 당해 노예수용소로 보내진다. 하루아침에 노예가 된 솔로몬은 자유인 신분은 물론 이름마저 빼앗긴 채 루이지애나로 보내진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아니었던 솔로몬은 '플랫'이라는 어색한 다른 이름으로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그 곳에서 12년의 여정을 견디며, 생존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1853년 1월, 그는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캐나다인을 만나게 되면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솔로몬은 12년의 노예 세월 동안 두명의 주인을 만나게 된다. 그의 첫번째 주인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노예를 인간적으로 대한다. 그는 폭력도 쓰지 않고 플랫의 능력을 인정하며 바이올린까지 건네주는 마음착한 주인이다. 하지만 자기에게 불이익이 닥쳐오자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팔아버리는 일을 감행한다. 그는 기회주의자다. 그는 체제순응적인 소시민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늘도 이런 고용주나 직장상사들이 많다.

플랫이 두 번째로 맞이하게 된 주인은 잔혹한 주정뱅이 술꾼에 성격이 낙폭한 에드윈 앱스(마이클 패스벤더)이다. 그는 노예들의 능력에 확실한 차등을 두고 폭력을 일삼으며 여성 편력이 심한 사람이다. 그는 심지어 공의의 하나님이나 성경을 자기 맘대로 해석해 흑인 노예에 대한 백인의 우월성을 정당화 시킨다. 두 번째 주인은 노예를 인간이 아닌 돈을 주고 구입한 하나의 제품으로 대하고 온갖 학대를 일삼으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며 느끼게 되는 감정은 결코 '슬픔'이나 '동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다. 또한 '공감'이자 '동질성'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노예에게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마치 노예처럼 부품이 망가지거나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현실이다.

최근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은 힘없는 자가 당해야하는 또 하나의 아픔이다. 전남 천사의 섬이라고 하는 증도, 임자도, 신안도 등 염전노예들이 300명이나 넘는다고 한다. 아직도 아프리카의 외진 곳에나 캄보디아에서는 하루 임금 500원도 안되는 임금으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법질서가 무너지고 법의 형평성이 무너져 또 하나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노예 12년은 인간성이 무시되고 인권이 유린된 이 시대속에서 인간의 기본 권리를 찾고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삶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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