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규제의 수 정해 놓고 일정기간내 개혁하는 것은 또다른 규제 필요성 생겨

김찬곤 경북과학대학 교수

얼마 전 정부는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열어 경제규제를 과감히 고쳐나가겠다고 하였다. 개혁하려는 규제의 구체적 숫자까지 제시하자 그동안 경제활동의 제약을 받아 온 많은 사람들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규제를 푸는 것은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또 쓸데없는 소모적 제한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었다면 당연히 그 규제는 폐지하는 게 옳다. 그러나 최근 언급되고 있는 '규제'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요소로만 인식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규제'는 어떤 일이 규칙이나 법령에 의해 일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므로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닌데도 마치 이것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악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규제가 없다면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이것이 적절히 막아주고 있는 긍정적 측면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만 1,100개, 대통령의 임기 내 2,200개의 경제규제를 없애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정부부처에서는 적어도 미리 그 수를 맞추기 위해 당연히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그러다보면 규제개혁의 질 보다는 그 수에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되고, 진정 개혁이 필요한 곳을 찾는 노력보다 건수를 올리기 손쉬운 규제의 개혁에 시선이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푸드트럭(food-truck)'규제를 풀어달라는 어느 상인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그 사람의 요구대로, 만약 음식을 조리하여 판매할 수 있도록 일반 트럭을 자유롭게 음식판매트럭으로 개조할 수 있게 해준다면, 규제개혁의 건수는 손쉽게 증가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자동차의 무분별한 개조와 함께 또 다른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마치 그 요구 수용을 규제개혁의 한 사례로 인정한다면, 불법개조와 합법개조의 구분지침, 트럭에서 판매하는 음식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품접객업종으로의 합법성 인정, 점포상인들의 불만에 대한 사전 설득 등이 담보되어야 하고, 개조한 트럭영업에 대한 과세논리도 확립되어야 할 것인바, 그렇다면 이를 위한 또 다른 규제가 필요한 아이러니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수 백 명의 일자리가 생기는 호텔을 지으려는데 유해시설로 규제대상이 되어 사업추진이 어려우므로 그것을 풀어달라는 어떤 이의 요구도 얼핏 일리 있는 주장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축하려는 그 호텔은 학교와는 불과 몇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만약 규제개혁으로 호텔 신축이 허가되면 학생들의 등하교 출입문과 호텔의 정문이 거의 같은 지점에 있게 되어 면학분위기를 해친다며 규제해제 불능을 주장하는 공무원을, 규제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무능력자로 치부해버리는 현재의 분위기도 마치 규제를 개혁하는 일은 무조건 장려할 일이고 규제를 개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논리를 양산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경제발전을 가져오는 규제개혁은 반길 일임은 틀림없지만 미리 개혁할 규제의 수를 정해놓고 그 기간 내 개혁하고자 하는 규제를 찾는 일은 뭔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올바른 성과를 위해 차분하고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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