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기계는 '불가마'가 있어 화독현이라 불린 제철터였다

일찍이 무쇠가 난 산 봉좌산(鳳座山). 봉황이 앉은 자세를 닮았다 해서 봉좌산이라 불렸다. 기계의 주산(主山)이다.

杞溪.

포항시 북구 기계면의 한자 글씨다. '杞(기)'는 고리버들을 뜻한다. '溪(계)'는 골짜기를 뜻하는 한자. 이 두 한자의 뜻을 통해 기계면은 일찌기 고리버들이 우거진 골짜기 동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조(朝鮮朝) 전기(前期)의 대표적인 지리지(地理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년)대에 대대적인 토지 정비가 있었으며 고려 때 지어진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地理)편에도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손본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여기에 기계 이름도 나온다.

잡초로 뒤덮힌 기계천(杞溪川).

"기계현(杞溪縣)은 본시 모혜현(芼兮縣) 또는 화계(化鷄)현인데 경덕왕이 기계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기계는 경덕왕이 지은 지명임이 밝혀진다. 경덕왕 눈에 기계는 고리버들이 무성한 골짝으로 비친 모양이다. 고리버들은 예(濊)를 상징하는 나무다. 우리나라는 상대(上代)에 예와 맥(貊)족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 중 예족이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다시 낙동강변을 거슬러 올라 각기 고대 제철(製鐵)국가를 형성하여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濊)사람들에게는 제철기술이 있었다.

화계(化鷄)라는 한자를 이두(吏讀)식으로 풀면 '화독'이 된다. 한자 '化'는 음독(音讀)으로 '화'라 읽고, 한자 '鷄'는 '닭'의 경상도 사투리 '독'이라 읽은다. '化鷄' 두 자 합쳐 '화독'이 된다. 화독은 '불가마'의 경상도 사투리. 여기서는 제철용 가마를 뜻하는 낱말이다. 기계는 일찌기 화독현(化鷄縣)이라 불린 제철터였음을 알 수 있다. 한자 '芼兮'는 '모혜'라 읽힌다. '모여해'의 집합 언어인가. 어떻든 경덕왕은 '기계(杞溪)'라는 새 이름을 지었다.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정면 모습.

이 즈음에 이르러 제철 기능은 이웃의 안강(安康) 쪽에 흡수된 느낌이다. 안강은 일찍 우수한 칼 제조 능력으로 소문난 고장이었다. 안강에서 출토(出土)된 한 보물이 있다. 금제쌍봉문환두상감대도(金製雙鳳文環頭象敢大刀)다. 5~6세기의 신라가 제조한 것으로 보아지고 있는 이 아름다운 칼의 길이는 85㎝. 두 마리의 봉황새가 환두(環頭)내부에서 입을 열어 구슬을 물고 있는 형상이 정교하게 드러나 보인다. '새 얼굴과 짐승 몸매 문양'의 칼은 오직 이 대도(大刀) 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호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안강의 신라 때 이름은 비화현(比火縣)이다. '비화'란 '비(칼) 화(불)'즉 '칼을 만드는 불'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안강에 칼 만드는 고대의 공장이 있었음을 뜻하는 지명이다. 고대의 지명은 구체적으로 지어져 있어 그 실체를 쉽사리 파악할 수가 있다.

기계면 문성리에 있는 고인돌. 뒤에 선 나무는 200년된 팽나무.

현재의 '고리버들 계곡'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로서의 움직임이다. 기계면 문성리(文性里)에는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이 있다. 커다란 간판이 대문처럼 걸려 있다. "경상북도 청도에서도 새마을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하는데?"하고 묻자, 기념관 관장 정은화씨는 조용한 표정으로 응대한다. "새마을운동 발상지는 명백히 기계면이고, 청도군은 가꾸기사업을 먼저 시작한 고장이라 할 수 있지요. 1971년 9월17일, 기계면 문성리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는 '전국 시장·군수는 문성리와 같은 새마을을 만들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나 보다, 어떻게 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프리카, 동남아,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새마을사업'을 배우려오는 집단이 20명 내지 40명 단위로 잇따라 견학 온다. 우리나라 초·중등학생과 대학생들도 집단으로 찾아와 며칠씩 묵으며 단체생활 속의 새마을 정신을 배워간다.

안강(安康)에서 출토된 '금제쌍봉문환두상감대도'. 5~6세기의 신라 유물로 호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특히 남양 홍씨 종택의 한옥방에서 묵는 것이 '인기 경험'이다.

신라 후기에 형성된 남양 홍씨 종택은 1926년에 건설된 한옥 집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인 정침(제사를 지내는 방)과, 좌측에는 우물채, 우측에는 행랑채, 정면에는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좌측에 중문채가 있다. 사랑채 우측에는 화계(화초를 심은 꽃밭)가 있고 사랑채를 독립적인 공간으로 쓰게 하고 있다.

안채의 방에는 옛 텔레비전, 재봉틀, 시계 등도 갖추어져 있어, 관람자들을 즐겁게 해 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마을지구를 다닐 때 타고 다닌 2인승 자동차. 박지만씨가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기증한 것이다.

옛 한옥의 공간 속에서 옛 풍속도 배울 수 있고, 예의범절도 배울 수 있어 '인기 만점'이라고…. 좋은 새마을 교육이 되어 주고 있는 셈이다.

이 한옥의 전체 평수는 315평, 건평 195평이라고.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방은 다락방. 어른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데는 비밀 창고. 타관에 출장 갈 때, 귀금속이나 중요 서류를 감추어두는 창고가 있는데, 방과 방 사이의 좁은 공간을 이용한 놀라운 창고다.

아이와 어른을 두루 즐겁게 해주는 '새마을 공간'이다.

남양 홍(洪)씨가 새마을기념관에 기증한 종택 한옥.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관장 정은화씨(사진 왼쪽)가 필자에게 한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성리에는 고인돌도 있다. 신석기(新石器) 시대의 묘비(墓碑)다. 고인돌의 길이는 5 너비는 2.5, 높이 3의 거석을 세워놓은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규모도 크고 독특한 방패 모양의 이 고인돌은 아직 발굴되지 않는 상태여서 매장구조 등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 없으나, 거대한 규모와 매장 형태로 보아, 신석기 시대 이곳 중성리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신분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문성리 서쪽 하늘 아래, 봉황새가 날개를 길게 접어서 앉은 형상의 봉좌산(鳳座山)이 길게 뻗어 있다. 그 아래로 흐르는 기개천(杞溪川)은 지금 마른 잡초 투성이. 강물은 거의 바닥난 형상이다. 지명을 기계(杞溪)라 한 것을 보면 꽤 넉넉한 강이었을듯한데, 이 잡초 우거진 형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군다나 기계의 기(杞)는 고리 버들을 가리킨다. 고리 버들은 강변에 자라는 나무다.

기계에서 본 고리 버들은 단 한 구루. 새마을운동기념관 뜨락의 연못 가에 서 있던 고리 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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