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물러간 고을 '흥해'·봉황 날아드는 형상의 '신광'

양동주 대구한의대 대학원 겸임교수양동주 교수 프로필 △포항 신광 출신 △대구한의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좋은터생활연구원 원장 △(사)精通風水地理硏究學會학술이사 △대구교육대교,포항대교,영진전문대 평생교육원 풍수지리학 교수

흥해는 신라 지증왕 때 '퇴화군'으로 불려

'불이 물러간 고을'이란 뜻에서 지명 유래

신광, 진평왕때 '혼불' 근원지로 지목받아

낙동정맥은 백두대간에서 분맥해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맥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와 같은 산맥체계는 10대강의 유역을 나누는 분수(分水)산맥을 기본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산맥 이름이 강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동해안과 낙동강유역의 내륙을 가르는 분수령산맥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전국토의 근골(筋骨)을 이룬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태백산 줄기인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영천의 운주산(雲住山, 806m)까지 높이 1천m에 달하는 산줄기를 형성하고, 경주시 서면 아화리의 낮은 구릉을 넘어 다시 경상남도의 가지산(加智山)을 거처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까지로, 낙동강 동쪽 하구에서 끝나며 길이는 약 370㎞에 이른다.

호미지맥은 형산강의 남쪽 물줄기를 가두는 맥이라면 비학지맥은 형산강의 북쪽 물줄기를 가두는 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학지맥의 분기점은 낙동정맥상의 709.1봉(헬기장) 즉, 성법령(省法嶺) 서쪽 300m 정도에 위치한 봉우리다. 성법령은 기북면 성법리에서 죽장면 상옥을 연결하는 921번 지방도로상의 고갯마루로 북으로 상옥, 하옥계곡을 거쳐 내려서는 오십천과 남으로 기계천을 일구어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물길의 경계를 가르는 주요 분기점이다. 비학지맥은 낙동정맥상의 709.1봉에서 갈라져서 성법령-△678.8(괘령산 분기점)-비학산(△762.3)-346봉-냉수리 윈고개-도음산(△384.6)-지곡뒷산-연화재-소태재-감태고개-우목리에 이르는 산줄기로 도상거리 42km에 달한다.

포항은 연일, 흥해, 청하, 장기로 크게 사등분 되는데 이 중에서 연일과 흥해의 문화와 경제권을 가르는 맥이 비학지맥이다. 시대적 변천에 따른 행정구역 통합을 하기 전의 흥해는 군내 13개 읍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을이었다. 지금은 포항시 속의 흥해이지만 원래는 포항이 흥해 속의 작은 포구였다. 100년 남짓한 세월 속에 엄청나게도 변화해 발전한 곳이 포항이라는 신도시다.

흥해는 영일군에 둘러싸여 마치 계란 노른자 형태로 존재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변화를 거듭해 1995년에 이르러 마침내 1917년 이전까지 모체였던 흥해와 더불어 영일군 전체를 흡수해서 오늘의 포항시가 되었다. 흥해들판에서 바라본 흥해의 진산 도음산과 조종산인 비학산이 흥망성쇠가 윤회하는 것일까? 지금 다시 흥해 고을이 번창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음도 앞으로 미래 세대를 지켜 볼만한 일 일 것이다. 흥해라는 고을은 그 이름을 신라 초기 지증왕 때 퇴화군(退火郡)이라 했었는데, 불이 물러간 고을이란 뜻이다. 태고적부터 종종 분출되는 가스로 불길이 솟구쳤던 지역임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이러한 유래는 신광(神光)이라는 지명 유래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즉 신광의 의미는 혼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혼불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정신세계의 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인류의 모태인 지구의 핵에서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는 화산의 기운이기도 한 것이다.

신광의 지명 유래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이 법광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날밤 비학산에서 밝은 빛 줄기가 찬란하게 뻗어 나오는 것을 왕이 보고 "신령스러운 빛이 나오니 이 지역을 신광(神光)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하여 그때부터 신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흥해 고을의 조종산(祖宗山)인 비학산(飛鶴山)이 오른쪽 날개를 남으로 굽이치며 뻗어 내리다가 신광면 냉수리에서 동으로 이어온 용맥이 좌우로 펼쳐놓은 야산이 곧 흥해의 진산(鎭山)인 도음산(禱陰山)이다. 사방 이십 여리에 뻗친 해발 383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포항지역의 진산들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이 고을 일대의 야산들 상당수가 이암이라는 돌도 아니고 흙도 아닌 형태의 황백색 암석층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태고적에 이 일원이 거대한 호수 속에 있을 때 유입된 미세한 흙들이 가라앉아 수압으로 다져지면서 암석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런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 노출된 것이라 한다. 동해안 답사차 흥해를 찾은 조선 풍수학의 거장 이성지는 비학산에 올라 흥해 들판을 굽어보고 이 일원이 옛적 호수였음을 설파하면서, 필히 수질이 나쁠 것이고 나쁜 물을 오래 먹으면 고질 피부병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고 전해진다. 신광면은 태백산 종단부에 위치하며 해발 762m 의 비학산과 더불어 용연저수지(호리못), 반곡저수지 등 호수가 많으며, 신광면 냉수리에서 발견된 '영일냉수리신라비'는 현존하는 최고의 신라비로 국보 제26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냉수리고분과 법광사지 등의 관광지가 있다. 본래 신라의 동잉음현(東仍音縣)이었다. 757년 신광현(神光縣)으로 개칭하고 의창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에는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주현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조선 후기에 신광면이 되었다. 1906년 경주군 신광면이 흥해군에 편입돼 흥해군 신광면이 되었다. 1914년 흥해군이 폐지되면서 영일군 신광면이 되고 24개 동리를 13개동으로 개편하였다. 1995년 1월 1일 영일군이 포항시에 합병되면서 포항시 북구 신광면이 되었다. 신광면의 한 마을인 용천리의 유래를 보면 냉수1리에 속하는 마을로 마을 근처에 있는 용바위골에 샘이 있어서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설화가 있었다. 옛날 신리마을 어느 집안에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젖을 주지 않아도 울지 않고 잘 놀았다. 하루는 아기어머니가 이웃집에 일을 도와 주고 집에 돌아와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아기가 시렁위에 올라갔다 벽을 타고 내려 오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어 이를 보고 놀란 어머니가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아기가 잠을 자는 동안 아기의 겨드랑이를 보니 날개가 돋아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아기장군이라 여기고 장군이 나면 역모를 꾀한다는 두려움에 안방에 콩 한 섬을 얹어 아기를 눌러 죽이려 했으나 아기가 이것을 떨치고 일어나므로 다시 안방 위에 콩 두섬을 쌓아 눌렀더니 하루가 지나서야 숨을 거두었는데 사흘 후 용천리 뒷산에서 주인을 잃은 용마가 나타나 사흘동안 슬피울다가 서쪽인 마조 쪽으로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신광면의 중심마을인 토성리는 신라와 고구려가 엿재를 분계선으로 대치하던 시절에 흙벽돌로 쌓은 옛 성터를 중심으로 성내, 장터, 윗각단, 샛각단, 비선거리, 너매각단과 앞걸(南川)건너의 갱빈마을을 합하여 1914년 토성리라하였다. 동잉음현, 신을현, 신광현 시기의 기지(基地)가 있던 곳으로, 예부터 토성리 또는 신광이라 불렀다. 웃각단을 중심으로 면사무소(1989년 신축), 신광초등학교, 신광중학교, 신광파출소, 우체국 등의 공공건물이 있다. 1989년 냉수리에서 발견된 신라고비(新羅古碑:국보 제264호)가 면사무소 뜰에 있다. 장터·토성 1리에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한 웃각단과 도로 서편에 형성된 장터마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웃각단과 그 동편 옛 창고 터에 형성된 마을인 창마을, 신광중학교 서편에 형성된 비선 거리와 같은 마을을 합해 성안(城內)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비선거리마을 북쪽인 신광중학교 서북쪽 토성지(土城址)모퉁이에는 고사인경주박공위창공덕비와 부윤조상공기영애민선정비가 있으며, 농지개량조합출장소에는 송재박공권조유덕영모비가 있다. 중학교 뒤 진골(陳谷)의 동편 신당(新堂)마루 부근에는 옛날 진정승(陳政丞) 사가(私家)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우물터와 고와(古瓦)들이 발굴되기도 한다. 청하로 가는 도로변에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진익룡(陳翼龍)의 묘가 있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신광과 흥해를 살펴보면 앞에서 논한바와 같이 태백산에서 낙동정맥의 큰 줄기가 뻗어 나와 진행하면서 비학산을 만들면서 다시 남과 북으로 두 갈래 갈라지면서 신광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을 만들어 봉황이 알을 품으로 둥지로 날아드는 형상을 하고 있다. 도음산을 주산으로 하는 흥해 또한 더 큰 국세를 만들어 넓은 양기터를 형성한 곳이다. 신광의 내명당에는 나지막한 봉우리의 산이 몇몇 있는데 필자는 이러한 봉우리를 봉황알이라 설하고자 한다.

따라서 학이 날아가는 의미로 비학산이라 불리어진 산 이름이었다면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넓은 의미로 살펴보면 남북으로 뻗어나간 산맥이 신광들을 완전히 환포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으로 해석된다. 신광에도 굴지의 K그룹 창업주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며, 지역민이 더 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앞으로는 비학산을 봉황이 알을 품으러 날아든다는 의미로 귀봉산(歸鳳山)이라 부르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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