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4일까지 포항시립미술관서 현악기 시리즈 등 대표작 160점 전시 미국 이주 후 30년간 작품세계 조명

연말을 차분하고 색다르게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전시장을 추천한다. 다양한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는 미술관부터 선조들의 옛 모습과 지혜를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까지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감성에 젖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는 포스코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조각과 회화를 비롯해 동양 정신문화를 대변하는 노자와 발상의 전환을 꾀한 현대미술이 내년 1월 4일까지 관객과 마주하고 있다.

전시장 1층 우웨이산 작품은 사색적인 반면, 2층 가득 변종곤 작가의 오브제 작품들은 발랄하면서 익살스럽다.

특히 변 작가가 1998년 그린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초상'가 눈길을 끈다.

이 초상화에서 박 회장은 화면 가장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양복과 넥타이, 그리고 프랑스에서 받은 훈장을 하고 루이풍의 고급의자에 근엄하게 앉아 있다.

화면 오른편에는 18세기 독일 시계가 그려져있다. 변 작가는 "시계는 철(Steel)이라는 소재와 정확하다는 것, 시간이 간다는 전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며 "전통 초상화와 달리 인물을 중앙에서 크게 벗어나게 그린 이유는 손님에게 중심자리를 내어주는 박 회장의 겸손을 표현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일화도 이야기했다. "박 회장의 초상화를 그리기 전 누구의 초상화도 그린 적이 없다"는 변 작가는 "박 회장의 딸과 인연이 있어 미국에서 박 회장 사진을 여러 장 받았고, 직접 만나보고 그릴 것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다시 돌아와 경험한 한국은 너무나 발전해있었다. 특히 포항제철 공장을 방문하고 받은 벅찬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며 "회장님은 상당히 겸손하고 명석하고 정확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유쾌한 분이기도 했고, 농담을 잘 하셨다. 초상화는 그 인물의 철학이 담겨야 하기에 고민을 많이 해서 그렸다"고 회상했다.

중앙대, 계명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구 대건고에서 미술교사 생활을 하던 변 작가는 1970년대 극사실주의 회화로 이미 한국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은 바 있다. 1978년 폐쇄된 미군비행장을 극사실적으로 그려 제1회 동아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삶이 흔들렸다. 사회비판적 작품세계 때문에 군부정권과의 갈등을 우려했고, 1981년 가족을 남겨둔 채 혈혈단신으로 뉴욕행을 택했다.

"빈털터리로 할렘의 빈민가에서 3년 동안 일본산 공짜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았습니다. 두려움과 오기로 눈은 빨라지고 짐승처럼 감각이 발달했지요. 그때 벼룩시장의 고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가 '앙상블라주'(emsemblage·다양한 오브제를 결합한 아상블라주에 회화를 조합한 작품) 에 탐닉하게 된 것은 가난했던 할렘의 삶에서 시작된 것이다.

용도 폐기된 오브제 위에 뛰어난 드로잉 솜씨로 극사실적인 그림을 곁들였다. 독특하고 풍자적인 작품으로 뉴욕 화단에 알려지게 됐다.

이번 전시는 '조우(Encounter)'를 타이틀로 미국 이주 후 30년간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다. 현악기 시리즈를 포함한 대표작 160점이 미술관 2층 가득 채워져 있다.

"고풍스러운 물건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 물건 자체가 역사이며,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그는 "국적, 용도, 형태가 다른 것들을 결합시켜 새로운 작품를 만드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중 뉴멕시코 지역 빈민가 사람들이 샤넬향수를 들고 있는 회화는 변 작가가 특히 애착을 가진 작품이다. 그는 "버려진 몽골리안들과 내가 함께 있고, 중앙에 샤넬향수를 배치했다. 그들의 비참한 삶에서 명품과 향수 등 사치품이 필요하겠냐고 미국정부에 되묻는 작품이다"며 "이들을 위해서는 학교와 의료시설 그들의 복지가 중요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마지막으로 전시감상팁을 묻자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이 처음에는 당황할 수 도 있지만, 오브제 각각의 특징을 즐기길 바란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오브제와 그리는 것의 조화와 마찰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종곤 작가가 포항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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