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也使無訟 (필야사무송) 재판보다도 소송 자체가 없게 해야한다

▲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청송이란 송사를 듣고 재판하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재판은 어렵다. 두 당사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누가 옳은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분석력과 직감력, 그리고 인간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보다는 송사 자체가 없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갑과 을이 다투는 소송이 진행되면, 이기든 지든 간에 양 당사자 모두 손실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최선인 것은 소송 자체가 없게 하는 것이다.

소송이 없는 세상! 이것은 인류의 꿈이고 유교의 이상이다. 천하가 잘 다스려지면, 도둑이 없고 폭력이 사라진다.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이가 없고 집마다 대문을 걸지 않고 잠을 잔다. 여기서 더 나아가 너와 남의 구분이 희미해져, 남의 노인도 우리 집 노인 같이 존대하고 남의 집 아이도 우리 집 아이 모양 돌봐주게 된다.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거나 모호해지므로 이를 '대동(大同·크게 같음)'이라 한다.

대동세계가 아니더라도 국민들이 예의와 염치를 알고 의식이 풍족하다면, 도둑이 적어지고 다툼이 줄 것이다. 도둑이 적어지고 다툼이 줄면, 그만큼 소송이 줄게 된다. 천하에 형사사건이 없어져 감옥이 비게 되는 상태를 '형조(刑措)'라 하는데, 인류의 역사상 몇 번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공자가 말하는 것도 형조의 일종인데, 그만큼 근본이 소중하다는 가르침이다. 법을 만들고 벌하는 것보다는 예의와 윤리를 가르치고 익히게 하여 아예 소송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욱 근본적이며 바람직하다. <안연편>





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一. 재판은 나도 남과 같이 하겠으나,

聽訟 吾猶人也

청송 오유인야



二. 반드시 백성들로 하여금 소송이 없도록 해야 하느니라.

必也使無訟乎

필야사무송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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