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대중의 공포 전쟁 지레 겁먹고 도망치지 말고 할일은 제대로 꿋꿋이 하자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한국은 메르스와 대중의 공포, 이 두 가지 전투를 치르고 있다" 지난 9일, 미국 CNN 방송은 이렇게 보도했단다. '병' 자체와 사회로 확산되는 '병에 대한 공포심'은 분명 다른 것이나 이 둘이 뒤섞여 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염병에 허물어지는 개개인 신체적 면역 체계도 심각하나, 더 걱정인 것은 멘붕 상태에 빠져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우리 사회의 심리적 면역 체계이다. 얼이 빠지고 넋이 나간다는 '혼비백산(魂飛魄散)'은 인간의 죽음을 뜻한다. 몸(신체)이 허물어지면 곧 마음(정신)도 파탄난다. 개인의 신체도, 사회의 신체도, 국가의 신체도 마찬가지이다. 일신(一身)의 주인은 마음(心)이다. 마음이 흔들리고 무너지면 결국 몸도 볼 장 다 봤다.

하멜이 쓴 표류기에서 읽은 적 있다. '달단인들이 빙판을 건너와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때 적에게 붙들려 죽임을 당한 자들보다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은 자들이 숲속에 더 많이 발견되었다' '누가 땅에 쓰러지면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고 줄행랑을 침. 그들은 병자들, 특히 전염병 환자를 몹시 꺼려하여, 그들을 당장 자기 집에서 끌어내다가 마을 밖을 데리고 가서 작은 초막에 살게 함' 기록의 진위야 어쨌든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病)과 죽음(死)' 앞에 매우 겁쟁이였다는 평가이다. 하멜 일행의 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살해버리거나 병자들을 혐오하여 격리하는 일들이 어색했던 모양이다.

골방에 박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다시 읽는다. 불안, 공포의 심리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 '천벌받은 여인들' 가운데 한 구절이다.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공포와, 사방에 흩어진/검은 유령떼가 나에게 덤벼들어,/사방이 피투성이의 지평선으로 닫혀진/움직이는 불안한 길로 나를 끌고 가려는 것 같아' 메르스의 공포로 떠는 현재 한국인의 심리를 쿡 찌른 듯하다. 보들레르는 시집 앞머리 '독자에게'에서 적었다. '우리 머릿골 속에선 수백만 기생충처럼/'마귀' 떼가 빽빽이 우글거리며 흥청대고,/숨쉬면 '죽음'이 숨죽인 신음 소리내며/보이지 않는 강물되어 허파 속으로 흘러내린다' 인간 내면에는 이렇게 병과 죽음에 대한 지독한 불안과 공포가 있다는 말이리라.

국가에,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회의 여성성이 있다면 기강을 잡고 방위를 담당하며 면역 체계를 수호하는 남성성도 있다. 지금 문제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남성성이다. 이것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다. 거시기 하지만 쪼금 야한 비유를 할까 한다. 남자는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밥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밝힌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팔에 힘이 빠져 밥숟가락 들 힘도, 아랫도리가 무너져 문지방 넘을 힘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이것을 과연 국가라 하겠는가. 고대 그리스의 어머니들은 말했단다. "아들아! 방패를 들고 돌아오거라.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방패 위에 실려오거라" 그리스 어머니들의 비장함은 아들보다 더했다. 강한 사회의 남성성은 이렇게 길러졌다. 밥숟가락 들 힘도 없는 몸은 이미 건강한 몸이 아니다. 국가사회의 신체도 마찬가지이다. 신체의 강건함은 일단 정신의 튼실함에 바탕한다. 지레 겁먹고 도망치지 말자. 각자 할 일은 제대로 꿋꿋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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