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 관계속에 인간은 여물고 또 여물어가는 법 그럴수록 회전초가 되자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서부영화였던가. 처음 회전초(回轉草)를 보았을 때 참 신기하였다. 뿌리없이 말라비틀어진 둥근 풀 뭉치들이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며, 마른 대지 위를 굴러다닌다. 놀랍게도 그것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거친 땅 바닥 위를 정처 없이 굴러다니나 어떻게든 영양분을 빨아 들이며 살아 있단다. 참 끈질긴 생명력이다.

제로 상태에서 전전하는 물건이지만 전혀 쓸쓸해 보이거나 고독해 보이지 않는다. 아예 그런 마음을 내면에 묻어 두지 않고 야무지게 사방으로 굴러다닌다. 뿌리내리지 않으니 거처가 필요 없다. 스쳐 지나는 바닥이나 허공이 자신의 터전일 뿐이다. 한때 나는 건달(乾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건달이란 산스크리트 간다르바(Gandharva)의 음역인 '건달바(乾達婆)'에서 온 말이다.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살면서, 천상의 음악을 책임진 신이다. 오로지 향내만 맡으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하고 연주만 한다. 거리의 떠돌이 악사나 광대라고나 할까. 훗날 우리 사회에서는 '하는 일 없이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또는 '난봉 부리고 다니는 불량배'를 일컫는 말로 와전되었다. 건달패-건달뱅이-깡패-기둥서방-룸펜-놈팡이의 속칭이 된 것이다. 그러나 건달은 원래 좋은 뜻이었다. 예컨대 '교양의 세계(藝)에 놀 줄 아는(遊於藝)' 사람, '일(노동)과 놀이(유희)를 합치시킨 풍류인', '유목민 같은 노마드적 인간', '무정주(無定住)의 깨어 있는 정신의 소유자' 등으로 풀어 낼 법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서로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상처 입는다. 귀향(歸鄕)의 의지가 있다면 반대로 이향(離鄕)의 의지도 있듯, 사람은 동락(同樂)을 원할 때도 독락(獨樂)을 원할 때도 있다. 공동체와 홀로의 사이를 오가는, 그 왕환(往還)의 애증 관계속에서 인간은 여물고 또 저물어가는 법. 여럿이 있는 것도 홀로 있는 것도 문제이다. 어느 쪽이 정답인가. 없다. '여건이 주어지는 대로'(隨緣), '처지에 따라서'(素位) 평온을 찾는 수밖에. 어느 시대든 형식은 달라도 요즘 말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는 있다. 그렇다고 동서양 현자들이 '인간관계'에만 줄곧 매달려 '행복'을 움켜쥐라고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덕성'과 '내면'에 눈을 돌리고 스스로 위안을 찾으라고 가르쳤다. 삶을 살다 보면 수많은 좌절에 당도한다. 공자라는 인물도 그랬다. 그의 만년에 내 뱉은 고백은 참 씁쓸하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섭섭한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人不知而不而). 그랬다. 공자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끝내 하고자 하였던 사람일 뿐이었다.

진정한 공부는 오지 않는 것을, 마음 비우고 기다리는 연습이다.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일화처럼, 다시 올 리도 없을 토끼를 무작정 기다리는 일이다. 남들이 떡 줄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희망'찾기에 또 우리는 얼마나 골몰해 왔던가. 찬란하게 동이 터올 것이라는 소망을 버리지 않고, 칠흑의 어둠을 지키는 야간 경비원처럼, 태양이 있다는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참 고통스럽다. 그럴수록 회전초가 되자. 자신이 바로 허공의 태양이 되어 끈질기게 나를 비추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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