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이상룡 선생 손자 며느리로 만주 독립운동 현장에 헌신

1910년 나라를 잃자 안동의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그 망명대열에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항일투사와 가족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 여겼다.

만주에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낸 안동의 여인들은 수없이 많지만 안동 임청각의 항일투사가족을 지켜낸 허은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허은 여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이자, 한말 의병장이던 왕산 허위 집안의 손녀이다.

8살 때인 1915년 가족들을 따라 서간도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이 바로 그녀의 종고모이다.

16세가 되던 1922년, 허은은 이상룡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했다.

그녀는 가족은 물론 만주지역 항일지사들의 버팀목이 돼 온갖 고난을 견뎌내야 했다. 굶주림과 추위, 각종 전염병은 물론 잔혹한 일제와 중국 마적은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특히 서로군정서 회의와 같은 각종 회의가 집에서 이뤄지다보니 하루하루 부족한 땟거리를 마련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허은 여사는 이런 여건 속에서도 서로군정서 대원들과 김동삼·김형식과 같은 항일투사들에게 손수 옷을 지어 드렸던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들을 잘 보필해 주는 것이 곧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 여겼다고 회고했다.

허은 여사는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이듬해 이상룡 선생이 서거하자 고국으로 돌아왔다.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다 써버려 고국으로 돌아온 이후 이들은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고 집안 형편이 좀 나아질 무렵 1997년 허은 여사는 돌아가셨다.

허은 여사는 회고록에서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남 앞에 비굴함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선대의 긍지가 그들 핏속에 자존심으로 살아 있구나 싶다"고 했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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