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갑용 리빙정보주식회사 대표이사
성주군에서 주거하고 있던 A씨는 2013년 2월 대구 서구에 소재한 모 아파트를 낙찰 받았다.

입찰일 전 대법원 사이트에 접속하여 서류송달내역, 권리신고서, 현황조사서 및 매각물건명세서 등 관련 서류를 열람하였으나 아무런 하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현황조사 후 새로 전입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였으나 소유자겸채무자인 60세 김모씨와 그 가족만 전입을 유지하고 있었다.

A씨는 과거에도 낙찰경험이 있어 점유자가 인도명령(낙찰잔금을 납부함으로서 소유권을 취득한 매수인이 당해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소유자, 채무자, 대항력 없는 임차인 등을 상대로 경매법원에 '점유자는 본 건 부동산에 대한 점유를 풀고 이를 매수인에게 인도하라'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신청하면 법원이 심사 후 결정함으로서, 집행관으로 하여금 점유자를 낙찰부동산으로부터 강제로 퇴거시킬 수 있도록 하는 명령) 대상이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혹시 집행에 어려움은 없을까 하는 마음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가족이 많은지 노약자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민센터 직원에게 가족상황을 물었으나 주민등록법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더 이상은 알려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주민센터를 나온 A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방문하여 미납관리비 및 가족관계를 물었으나 직원은 조사를 위해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면서 귀찮은 표정을 짓는 바람에 미납관리비가 없다는 말 외에 더 이상 자세한 답변을 듣지 못하였다. A씨는 소유자가 관리비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막돼먹은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여 발길을 돌렸다.

입찰 당일 법정은 사람들로 붐볐다. A씨는 살고 있던 집이 팔려서 3개월 후에는 이사를 해야 할 형편이어서 감정가(시세)대비 95%를 제시하여 최고가매수신고인의 자격을 득하였고, 약 1개월 후 매각대금(낙찰잔금)을 납부하였다.

경매에서 중급 이상의 실력을 쌓았다고 자부하던 A씨는 낙찰 받은 아파트에 미리 찾아가서 점유자를 만나 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잔금납부 즉시 인도명령을 신청하여 결정문을 손에 쥔 다음 아파트를 방문하였는데 매우 난감한 광경을 목도하였다.

아파트 안방에는 90세된 할아버지가 누워있었고 할머니는 거실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이혼으로 혼자된 아들과 딸, 손자, 손녀 등 무려 10여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작정 갈 곳이 없다면서 시골에 친척소유의 조그만 토지가 있는데 그곳에 움막이라도 지어야 할 사정인데 지금은 돈이 없으니 6개월을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A씨가 이사를 해야 할 날은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집행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점유자의 사정이 딱하다는 이유로 명도집행을 해 주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노인네들의 건강상태로 봐서 집행관이 쉽게 말을 들어줄지 의문이다.

집행현장에서 사고가 예견되는 경우 대개의 집행관은 매수인(경락자)에게 재차 합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집행관으로서는 집행불능의 이유가 있기에 조서를 작성하여 편철 후 보고하면 자신의 소임을 다 한 것이겠지만, 매수인으로서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여 마지막 방법으로 집행을 신청하였는데 다시 합의를 촉구하는 것은 매수인에게 일방적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돈은 비록 차가운 것이지만 A씨의 마음 한구석은 따뜻해서 오갈 데 없는 노인네 가족을 무작정 쫓아낼 수만도 없어 자신의 이삿짐을 컨테이너에 넣어 보관하고 부모님 집에 기거하면서 점유자 가족을 수시로 찾아가서 사정하여 넉 달 뒤 이사비용을 넉넉히 지급한 후에야 간신히 아파트를 인도받을 수 있었다.

경매가 대중화된 작금, 권리가 간단한 물건에는 수십 명이 응찰한다.

경락금액도 당연히 높아 수익률은 5~10%가 고작인데, 명도에 5~6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면 결과는 당연히 손해로 이어질 것이다.

경매! 쉬워보여도 매번 간단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올해는 집값이 많이 올라 다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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