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신문화 창' 경북이 '대한민국 興起(흥기)' 출발점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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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애 류성룡 선생의 차종손 유창해씨(왼쪽)와 전통체험을 하고 있는 장병기씨가 고택에서 하회마을의 경치를 보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kyongbuk.com
한국인은 진정한 한국인인가? 양복을 입고, 양옥에서 살고, 성경과 서양 역법인 일주일(7일)을 주기로 생활하는 한국인이다. 다른 문명의 좋은 것은 수용해야 하지만 알맹이가 있는 정체성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정체성은 개화기 아이덴티티(identity)를 번역한 단어로 집단이나 민족의 독자성 유사성 일체감을 뜻한다. 국가의 정체성은 세계 약 200개 국가들 사이에 서로 다른 차이성이라고 본다. 차이는 물질의 차이보다 정신 사상 문화의 다름이다.

서세동점 이전 시기에 정체성은 ‘道(도)’라고 했다. 중국은 ‘體(체)’ 일본은 ‘魂(혼)’이라고 했다. 정체성의 유무는 국가 존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의 종전으로 일본의 식민지 였던 대부분 국가는 독립했지만 유구국(오키나와)과 만주국은 독립하지 못했다. 만주국은 중화민족의 흡인력에 흡수됐고, 유구국은 이대로가 좋다며 오늘날까지 일본영토에 속해 있다. 고대 지중해 최고의 정신문명을 가진 국가인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에 점령당하기전 데모스테네스의 反(반) 마케도니아운동으로 점령이 늦춰졌고 점령 이후에도 그 정체성을 유지해 이후 로마로 서양문명의 모태가 됐다.

사드논란으로 한반도는 유례없는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등 형국이다. 1894년 갑오년 동학혁명에 가담한 백성을 진압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인 민비(명성황후)덕택(?)에 청일전쟁으로 종주국이 청에서 일본으로 바뀐 것이다. 소름끼치는 약소국 비극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사드 배치가 ‘좋다’ ‘나쁘다’ ‘필요하다’ ‘불필요하다’라는 식으로 정치(朝)나 시민사회(野) 모두 논쟁만 하고 있다.

위기이지만 우리 조상들의 한때 씩씩하던 그 웅혼한 기상은 한줌도 찾아 볼 수 없는 답답함이 정체성을 논하게 된 출발점이다. 아테네는 30여만 인구이지만 페르시아 500만 대군 에 항전하여 적군을 격퇴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만주국을 세우고 욱일승천 하는 시대에 대한독립을 주장하며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추구했던 우리 한국인의 기상은 어디로 간 것인가. 김좌진 홍범도장군의 세계를 놀라게 한 청산리전투는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오직 정신력이고 지도자의 헌신 그 자체다.

한반도에는 휴전선을 경계로 5천여만 대한민국과 2천4백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산다. 7천여만의 가장 큰 모순은 분단이요 가장 큰 비전은 통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체성으로는 통일은커녕 우리 부모 세대들이 이룩해낸 중진국의 모양도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사상 유례 없는 2%대의 성장으로 성장률이 내리막길이다. 북한의 50, 60년대 대동강의 기적은 90년대에 아사자가 속출하며 막을 내렸고, 한강의 기적은 2008 금융위기 이후 동력을 상실한 채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중국의 패권추구 사이에 끼여 막을 내리려는 불길한 징조를 지울 수 없다. 안으로는 갈등 분열, 비뚤어진 물질문명이 팽배하고 검찰고위간부와 변호사가 수십억을 해먹는 공공부문의 비리부패가 일상화된 사회다. 내우외환이다.

우수한 서양을 배우려 미국으로 유럽으로 떠난지 수십년간 축적된 지식과학은 이 시대의 위기현상에 대해서 핵심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 이제 한민족의 유전인자 속에 한민족의 역사 속에 있었던 정체성에 대해 옥(玉)을 찾아 정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본지가 ‘경북, 정체성을 말 한다’를 연재하는 까닭이다. 

우선 오늘날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한 최초의 원형국가 통일신라를 알아본다. 일부 자학 사관론자들은 신라 삼국통일에 돌팔매를 던지기에 이 문제는 중대한 문제다. 당시 백제는 북위 왜, 신라는 당나라를 서로 끌어들이며 정복전쟁을 폈다. 만약 그 때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작은 나라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 또 으르렁대며 한반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만한 크기의 국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초기 신라의 소국의 국토넓이만한 국가는 부지기수다. 스위스와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의 베네룩스(Benelux)3국도 그렇다. 세계 최강의 당나라를 몰아내고 어떻게 기적적인 통일을 할 수 있었는지, 삼한일통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무열왕 김춘추, 김법민에게 그 의지를 배워야한다.

그 시절 있었던 한국 최초의 고유사상 풍류도를 보자. 신라를 불교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재창조하려는 원효와 설총, 신흥 유학자 최승우 최치원 최언위 신라말 3최의 고뇌에서 오늘의 내우외환 앞에서 숨어있거나 침묵하는 이 시대 식자층의 갈 길을 살펴본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으로 흔들리던 고려의 정체성을 설정하려던 김부식, 승려 일연, 이승휴(성주)의 역사서와 그리고 고려왕조를 지키려는 당대의 애국자 정몽주의 사상을 살핀다.고려 말의 부패한 나라를 새로운 유교 이데올로기(성리학)로 개화하려던 신흥 성리학자, 삼국유사와 함께 안향 이색 김득배 정도전의 사상을 살펴본다. 선비정신으로 반듯한 나라를 지향했던 윤상 김계행 김일손 김굉필 이언적 이이 유성룡 정구 정경세 장현광 이현일 이상정. 그리고 이황의 독창적인 학문과 사상을 살펴보자.

달도 차면 기운다던가. 저물어가는 조선의 재창조를 위해 당시의 개화파, 동도서기와 함께 조선말 3대사상인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경주)에게서 참 민(民,people)을 위한 나라를 그리고 그를 복권하고자 한다.

무너져가는 나라를 지키고 조선 왕조를 지키자는 의병운동이 전국 최초로 일어났고 대구의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해 독립운동세력이 가장 많은 곳이 경북이다. 그 주역들은 알렉산더 모택동 호치민 못지않은 국가 공동체에 대한 헌신성이 특출했다.

동학을 제압하려는 일본과의 최초 전투도 경북(한천)에서 일어났고, 임시정부이지만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건국 비전세력 그리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력에 따라 받는 코뮤니즘 소셜리즘의 이상을 꿈꾼 이동휘 여운형 김재봉(안동)과 함께한 경북의 운동가들은 비록 현실에 눈이 밝지 못해 실패했지만 조국과 인민의 평등세상에 대한 염원만은 강렬했다. 역사가 투퀴디데스는 지도자의 4가지 조건중에 조국사랑과 돈에 초연함을 꼽았다.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현재 한국 지도자들은 조국사랑은 위선과 쇼에 그치고 돈에 목말라있다

미군정의 실책에 항거한 현대 한국 최초의 민주화운동 ‘대구10월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치부해버리고 있는 현실은 올바른 평가인가에 대해 지상 토론을 연다. 대한민국 건국이후 민족 최대 최고의 가치인 통일운동, 3대 자유 민주주의자 조봉암 장준하 함석헌 선생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한 지역 인사들, 산업화로 한민족 반만년 역사상 최대의 물질적인 부를 이룩한 불세출의 혁명적 지도자 박정희, 정치민주화를 앞당긴 정부수반 인 장면 김영삼 노무현과 함께한 지역 인사들을 찾아본다. 벼슬이 높았다거나 지역 출신이라고 미화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의 크기보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그 알맹이를 기록하고자한다.

마산3.15의거와 4.19의거,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화운동, 전두환 신군부와 김대중이 맞부딪친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회복한 민주공화국 ‘87체제’가 있기 까지 우리 경북에는 어떤 정체성으로 임했는가. 대구사회와 문화는 이대로가 좋은가 아니면 바뀌어야하는가. 바뀐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우리한국은 위기라고 말한다. 아예 위기보다 심한 길을 잃었다고도 한다. 개인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선명한 답이 없는 자가 사회적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단테의 <신곡>은 “길을 잃고 뒤돌아보니 어둠속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뒤돌아 볼 수 있는 것과 어둠속에 있는 나를 볼 줄 아는 것이 정체성의 발견이다. 이 연재물의 기획취지는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동굴 속에서 나와 이데아(태양)를 보자는 것이다. 무슨 고리타분한 정체성이냐고, 먹고살기도 힘든데?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데 있어 정체성은 찐빵의 안코이고, 술의 누룩이자 태풍의 눈이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 미국은 청교도정신이라는 정체성으로 건국했지 않았는가. 앞서 유럽은 14, 15세기에 기원전후의 그리스 로마에서 정체성을 찾았으며 서양흥기의 시발이 됐다. 한국의 정체성, 경상북도가 무엇을 말할 것이가? 그런 정신 사상 문화의 결정체인 정체성을 살려내는 것이 우리 미래의 희망이다.


김정모 논설위원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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