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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욱 정경부장
영국 윈스턴 처칠이 수상으로 재직할 당시 어느 날 국회 연설시간에 늦어지자 운전기사에게 ‘시간 안에 국회에 도착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지시를 받은 운전기사는 신호를 무시하며 내달렸고 결국 교통경찰에게 붙잡히자 “수상 각하의 차인데 국회 연설시간에 늦어 급하게 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교통경찰은 뒷좌석을 바라본 뒤 “수상 각하를 닮았지만, 처칠 경이 탄 차가 교통 위반을 할 리가 없소. 당신은 교통 위반에다가 거짓말까지 했으니 면허증을 내놓고 내일까지 경찰서로 출두하시오”라며 단속했다.

처칠은 교통경찰의 업무 태도에 감명을 받고 경찰청장에게 특진시킬 것을 명했지만, 이번에는 경찰청장이 “경찰 조직법에 그런 규정이 없어서 특별진급을 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그날 처칠은 “오늘 경찰에게 두 번씩이나 당하는구먼”이라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니면 규범과 규칙에 엄하고, 원칙에 대한 융통성이 없기로 유명한 영국의 실태를 빗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원칙이 조그만 섬나라이면서도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융통성이란 게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작은 성공을 보장해 줄지는 몰라도 국가의 미래가 걸린 일에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온 나라를 분노케 한 국정농단사태의 발단을 살펴봐도 결국은 융통성, 나쁘게 말하면 ‘예외’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국민은 그로 인해 비참한 심경 속으로 빠져들었고, 치솟는 분노가 또 다른 예외사태로 치닫는 모양새다.

화난 국민은 국회의 탄핵소추에 이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수용을 촉구하고 나섰고, 한쪽에선 탄핵기각을 요구하며 맞불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화난 국민이 매 주말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서 자신들의 뜻을 밝히고 요구하는 것이나, 이에 반대하는 것 모두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소추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담당할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수용과 기각을 요구하는 행위는 국민의 권리를 뛰어넘어 헌법재판관들에 대한 위협적 행위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믿지만, 이들의 행위를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필자 역시 분노를 넘어 허탈한 지경이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이성이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도 담았지만, 그 의무도 함께 담아 놓았다.

누군가가 국정을 농단했다고 해서 헌법적 권위를 초월한 요구를 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그 헌법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를 농단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분노보다는 이성적인 눈으로 헌법을 지켜야 한다.

당장은 국민의 분노를 풀 수 없겠지만, 국가의 먼 미래를 위해 일부 권력들이 헌법을 농단한다면 국민이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사형될 것도 알았고,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알았지만 ‘악법도 법’이라는 한마디로 자신을 내던졌고, 결국 서구사회는 법에 의한 제도를 완성해 오늘날 민주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그것이 진정한 국민의 힘이다.



이종욱 정경부장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정치, 경제,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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