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돈 경북대 교수
어떤 경우라도 특정 지역에 사는 주민에게는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독특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갖게 마련이다. 오랜 기간 주어진 자연적 환경 속에 살아간 주민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름의 특성이 저절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로 말미암아 지역의 바깥에서 당해 지역 주민의 삶을 바라볼 때 드러낸 모습을 통해 어떤 연관된 이미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이것을 결국 그들에게만 고유한 특성으로서 정체성이라 규정할 수가 있다. 정체성은 피아(彼我)를 구별하는 인식이므로 자신의 주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깥으로 비쳐질 때 올바른 모습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지역, 지역주민의 정체성이란 달리 말하면 지역의 문화라고도 풀이할 수가 있다. 하나의 국가는 물론이고 그 가운데 특정한 지역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문화에 대해서는 현재적 가치 판단에 입각해 높낮이를 재단해서는 곤란하듯이 정체성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요즈음 대구·경북사람을 바깥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바라다볼 때 대뜸 떠올릴 만한 이미지를 하나의 단어로만 표현한다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 보수성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때의 보수성이란 일반적 용법과는 매우 다르게 긍정적 의미로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대체로 비난하려거나 비아냥거리는 용도로 사용함이 대체적 경향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르고 적확한가를 문제로 삼을 수가 있겠다.

사실 보수적, 보수성이란 단어의 본래 뜻은 그렇게 부정적이지가 않다. 흔히 보수적이란 단어를 글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따라서 그것을 반드시 지켜내려는 성향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를테면 역사성과 전통성을 지닌 어떤 것, 보편적인 가치와 이상을 내재하고 있는 것 등을 뜻한다. 그러므로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는 지역, 그 주민이라면 어떤 지역도 지켜야 할 대상은 있게 마련이다. 지켜서는 안 될 것, 버리고 바꾸어야만 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본래적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 보수성이란 외부로부터 어떤 폄하나 훼손이 가해지면 어떤 경우라도 그를 꼭 지켜내어야 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 대상을 지칭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이다.

아상과 같은 측면에서 보면 보수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지역이라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셈이므로 굳이 대구·경북만을 대상으로 정체성이라 지목해 비난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만약 보수적 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지역이나 사회는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잃은 셈이 되므로 정상적으로 유지되기가 어려운 법이다. 다만, 그 속에는 시대적, 사회적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무조건 기존의 요소를 그대로 지니려 하는가에 따라 그들의 성향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전향적이며 진취적 자세를 취하는 경우와 무조건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전자를 대체로 진보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무조건이라는 측면에서 수구성이란 단어로서 보수성과는 구별할 수가 있다. 기존의 구조나 체제가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지켜낼 요소가 있다면 그 속에는 합리성과 함께 객관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따라서 언제나 보수성은 그만큼 합리적, 논리적이라고 이해할 수가 있다.

보수성이 오래도록 유지되어온 데에는 언제나 합리적 근거와 정당성을 밑바닥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이 항구적으로 유지되지 못할뿐더러 뿌리내리기 이전에 벌써 근거를 상실함으로써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터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구 경북 사람들을 대상으로 부정적인 의미, 비아냥거리는 뜻으로 사용하고 보수성은 적확한 용법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엄밀히 말해 그것이 부정적이라면 차라리 수구성(守舊性)이라고 바꾸어 부르는 편이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 수구성은 일단 내용에 정당성, 부당성을 안고 있는지의 여하는 전혀 문제로 삼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가 갖고 있는 것,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더라도 무조건 지켜내려는 속성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대구·경북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왜 그처럼 왜 수구적인 성향을 강하게 지닌 것으로 비쳐지게 되었을까. 과연 대구·경북 사람들의 정체성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올바르며 적절한가. 만일 그러하다면 이는 더 이상 깊이 뿌리내리기 전에 하루빨리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이다. 그 속에는 그를 지켜내어야 할 만큼의 합리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의문은 대구 경북의 정체성이 언제부터 그렇게 잘못 비쳐지게 되었을까 하는 대목이다. 대구 경북 지역 사람들이 처음부터 수구적으로 비쳐졌을 리 만무한 일이다. 대구ㆍ경북의 정체성을 수구적이라 진단함이 언제나 정당할 정도로 역사적 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구는 한때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진보성을 지녔던 도시로 평가되어 왔다. 일제를 대상으로 독립 운동을 비롯한 각종 저항운동, 해방 이후 미군정 시절의 10·1인민항쟁, 60년 4·19의 불씨가 된 2·28학생의거, 최초의 교직원노조 결성은 그를 측면을 여실히 방증해 주는 사실이다. 단지 몇몇 사람만이 진보적 성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한국사회의 일반적 수준보다 대구 경북 사람들이 한층 진보성을 띠고 있었다. 그런 양상은 1956년 치러진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당시 현직으로서 극우적 성향의 이승만과 진보적 성향의 조봉암이 후보로서 맞붙었거니와 전국적 득표에서는 70:30이었지만 경북에서는 55.3:44.7, 대구에서는 27.7:72.3로 조봉암이 한층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대구 경북이 전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장 진보성을 띠고 있는 지역이었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는 사례였다.

그러나 그런 양상은 1961년 박정희정권이 들어선 이후 점차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군사정권이 지속되면 될수록 진보성은 점점 더 희박해져 갔다. 1963년 박정희와 윤보선이 맞붙은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전국 득표는 46.6:45.1인 반면 대구는 51.2:44, 경북은 55.6:36.1이었다. 두 사람은 1967년 제6대 대통령성거에서 재격돌하거니와 이때는 전국이 51.4:40.9로 나타난 반면 경북은 64:26.4, 대구는 71.5:23.5로 엄청난 변화 양상을 보였다. 그 배경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지역 출신인 박정희를 중심으로 지역성이 고착되어간 현상과 맞물려 진행된 일이었음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겠다. 지역 인사들을 정치적 요직에 등용함으로써 지역민을 점차 회유하여 갔다. 박정권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진보적 성향의 인사들이 저항하자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하여 억압해 갔다. 박정권 시절 경북 출신 인사들이 깊이 연루된 인혁당, 통혁당, 인혁당재건위, 민청학련, 남민전 등 각종 사건들과 그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도 그런 사정이 잘 드러난다. 진보성을 씨앗을 말살시킴으로써 지역민이 친정부적 입장을 갖도록 길들여 갔던 것이다. 정부의 지시라면 무조건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일종의 종교성을 보임으로써 수구성은 점점 고착되어 간 것이라 하겠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땀 위에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 현황이다. 이제부터라 정치에 길들여진 미몽으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구 경북 정체성의 본질은 수구성이 아님을 지금이라도 실증해 주어야 할 때다. 그렇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수구성이 정체성을 뿌리내릴 것임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바깥으로부터 비난이 있더라도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을 터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