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 주상절리 푸른바다 위에 만개한 해국 꽃잎을 펼친 듯
경주 양남 주상절리도 그랬다. 첫출발을 하서항에서 나아 해변까지 스케치 하듯 훑고 지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첫눈에 반한 사람과 통성명만 하고 헤어진 기분이랄까. 서운한 마음에 다시 찾았다. 진면목을 보려면 좀 더 깊이 있는 만남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사이 하서항에도 봄이 만개했다. 마을 여기저기에 붉거나 노란 꽃들이 상큼한 바람을 일으켰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동네 카페 앞을 지난다. 달콤한 생크림 파르페와 진한 커피 향이 마음을 잡아당긴다. 불현듯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 상호가 동네 카페니 저곳에 가면 아는 얼굴 한 명쯤 앉아 있을 것 같다. 그 혹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 창 너머 푸른 바다와 기울어진 주상절리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누워 있는 주상절리를 지나 전망대 쪽으로 걸어갈 때는 바다만 보지 말고 왼편의 경사진 언덕도 살펴보자. 지반이 솟아오를 때 계단 모양의 해안 단구가 만들어지면서 드러난 속살이 보일 것이다. 파도에 쓸린 분출 화산암의 누운 기둥들이 보이면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볼 일이다. 한때 이 길이 파도가 철썩이던 해변이었다는 사실보다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후세에 당시의 흔적에 대해 말해 주고 싶어 한다는 것에 더 놀랄 것이다.
파도소리 편의점 앞은 북적북적하다. 엿도 팔고 군밤도 판다. 유년이 그립다면 추억의 옛날 과자를 사서 일행이랑 나눠 먹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나무 계단을 오르면 눈앞에 거대한 조망타워가 보인다. 살짝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모노 커피집 앞, 천사의 날개가 있는 포토존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면 된다. 시내로 치면 이곳이 중심지다. 마실 곳도 쉴 곳도 볼 것도 많다.
조망대 주위엔 커피 집과 펜션이 밀집해 있고, 언덕 아래 담벼락에는 해바라기와 그리스 에게해의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벽화가 있다. 그 앞에 서면 잠시 가던 길 멈추고 그림과 교감해 보길 바란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벽화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말을 걸어온다. 그런 다음 언덕 위로 올라가 커피숍 앞 그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입이 심심하다면 어(魚) 선생네를 기웃거려보면 어떨까. 즉석 수제 어묵과 크로켓 전문집인데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사 가이소. 싸게 줍니더.”
고무 대야를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 오가는 손님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춘다.
■ 여행자를 위한 팁
△길과 음식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나아 해변은 해파랑길 중 가장 쉬운 코스라 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해안길 따라 걸으면 된다. 쉬어갈 만한 장소도 먹을 것도 많다. 시작점인 하서항은 물론 읍천에도 횟집과 활어직판장이 있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중심으로 전망 좋은 커피집과 펜션이 밀집해 있다. 대부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포인트
하서항에서 출발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게 기울어진 주상절리다. 파도소리길을 따라 누워 있는 주상절리, 위로 솟은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순이다. 이름을 알고 보면 의미가 달라진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선생의 시처럼.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