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 등 문화재 보존·계승 보다 이벤트성 사업 주력 '비판 제기'

석곡의 종손부 박순열 씨가 생가에 보관 중인 목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정승훈 기자.
포항 출신 한의학자이자 유학자인 석곡 이규준 선생을 기리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실물 유물은 외면 받고 있다.

역사·학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보존해 계승하려는 노력보다 이벤트성 사업에 주력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포항시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석곡 재조명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지난 21일 동해석곡도서관에서 ‘석곡 인문학 어울마당’을 개최했다.

또 2천200만 원을 들여 ‘석곡의학전서’ 제작과 함께 해제, 번역 등을 한국한의학연구원에 의뢰하는 등 석곡 저술의 대중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간 소문학회 등 민간이 주도해온 포항 출신 인사의 기념사업을 포항시가 본격적으로 도맡는 모양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석곡의 목판 등 실물 유물에 대한 대접은 이 같은 활발한 움직임과는 대조적이다.

석곡이 책을 펴내기 위해 만든 목판 364장이 생가에 전해지고 있지만 훼손은 물론 도난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후손에만 맡겨진 채 항온항습장치 등 적절한 보존·관리 조치 없이 생가 창고 한쪽에 쌓아둔 정도로 보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습기로 인한 훼손을 우려하며 정기적인 보수관리를 하지 않아 곰팡이나 미생물에 의한 오염도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국학진흥원 박순 박사는 “10여 년 전 첫 조사 당시에도 상태가 나빴다. 습도가 높은 곳에서 바람을 쐬지 못하며 보관되는 만큼 지속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망실도 잦았다.

목판은 본래 600장 이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탓에 소재가 불분명하다.

소문학회장을 역임한 황원덕 동의대 교수는 “학회가 석곡을 기리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 현지조사에서 고령의 마을 주민이나 목판 제작에 참여했던 목수들은 6·25 동란 당시 목판을 땔감으로 쓰는 일이 많았다고 증언했다”며 “199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현재 수량보다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포항문화원이 지난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잠시 맡기도 했고, 한국국학진흥원도 10여 년 전 소유권을 보장하고 관리권만 위임받는 기탁 운영을 몇 차례 제의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포항시도 2010년 5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석곡도서관으로 옮겨 보관할 계획을 세웠으나 역시 실제로 이어지진 못했다.

후손이 생가에 보관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포항시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고, 운반이 가능한 문화재인 만큼 생가 자리라는 조건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시·도 지정문화재의 경우 개인소유라 하더라도 보존·관리 등을 위한 경비를 보조할 수 있지만 포항시 등 관련 당국은 목판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548호로 지정된 2009년 이후에도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훈증소독 등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 지원이라도 시급하다고 지적하지만 포항시는 어떤 보존책이나 활용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석곡은 앞서 2014년 ‘포항을 빛낸 인물’로도 선정됐지만 정작 사료가치가 큰 문화재는 십수 년 넘게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석곡의 종손부 박순열(82)씨는 “비가 오면 습기가 걱정이고, 불이 날까 또 밤낮으로 걱정이다. 누가 훔쳐갈까 외출도 마음 편하게 하지 못한다”며 “생가가 바로 석곡 서당의 자리였던 만큼 이곳에 목판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석곡을 알려온 향토사학자 황인 씨는 “문화재는 제 자리에 있어야 제 가치를 지닌다”며 “예산이 다소 들더라도 보관 시설을 생가 인근에 지어야 한다. 이를 역사문화관광코스로도 활용할 수 있는 만큼 포항시의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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