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너른 풍산들…골골마다 풍요로운 마을 조성

풍산인물1.jpg
경북 신도청 바로 옆에 위치한 풍산읍은 뒤로는 학가산과 천등산이 둘려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을 끼고 드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인구가 조밀하고 물산(物産)이 풍부해 풍산(豊山)이라 했다.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생활여건이 좋은 이곳은 골골 마다 동성마을이 형성되어 우렁골 예안이씨, 마애리 진성이씨, 하리 전의이씨, 매곡 영양남씨, 오미동 풍산김씨. 소산 안동김씨들이 5~6백 년을 세거하여 오면서 고유의 문화를 형성해 많은 문화유적을 남겼고 수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명문명족의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풍산들 전경
풍산을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풍산들이다. 풍산들은 경북 북부의 곡창으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게 해준 낙동강이 준 크나큰 선물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도읍이 될 만 하다’고 한 것도 이 들 때문이다.

지금은 주로 벼농사를 짓지만, ‘풍산무’라고 하면 전국 어디서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 한때 서울 무 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풍산장터는 지금도 3일과 8일에 장이 서고 있다. 전국에서 얼마 되지 않는 오일장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풍산장 인근에는 동성마을과 종가가 많아 예로부터 기제사나 불천위 제사가 많아 다른 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탕건, 향로, 제기와 같은 제사용품도 많이 거래된다.

최근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신 도청청사를 찾는 관광객의 증가로 이용객들이 점차 늘고 있다. 매년 9월 말이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에 맞쳐 ‘안동한우불고기축제’가 풍산장터에서 열린다.

예안 이씨 충효당.
△ 보물, 예안이씨 충효당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산 중턱에는 예안 이씨 충효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집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순국했던 풍은 이홍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건물 자체가 보물(553호)로 지정돼 있는 이 집은 일반에게는‘예안 이씨 충효당 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충신 이홍인 (1525~1594)과 그 9대손 이한오 (1719~1793)의 효행을 기려 이름이 붙여졌다. 한 가문에 임금이 두 개의 정려(旌閭)를 내리고 포상을 하는 충효의 가문은 흔치 않다.

△ 소산마을·오미마을

소산(素山)마을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의 거두 청음 김상헌의 고향이다. 이 마을은 안동 김씨 500년 세거지로 본래 금산촌(金山村)으로 불렸다, 하지만 청음이 낙향해 은거하면서 “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을 금산촌이라 하는 것은 화려해 합당치 않다”며 마을을 감싸고 있는 소요산의 이름을 따 소산(素山)으로 고쳤다.

이 마을은 안동을 본관으로 쓰는 두 안동김씨 문중의 세거지로 고려개국공신 김태사(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후안동김씨 또는 신안동김씨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金殷說)을 시조로 하는 선안동김씨 또는 상락김씨가 있다.

오미마을은 풍산 김씨 발상지다. 오미(五美)라는 지명은 유연당 김대현(1553∼1602)의 여덟 아들이 모두 소과에 급제하고 그 중 다섯 명이 다시 대과에 급제하면서 인조가 오묘동을 오미동으로 고쳐 부르게 한 데서 유래됐다. 김대현의 후손은 문과 급제자만 23명이 나왔다. 일제강점기인 후대에는 이중교에 폭탄을 던져 일왕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김지섭 등 독립운동가 24명이 배출됐다. 마을 입구에는 ‘오미광복운동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최근 이 두 마을은 ‘한옥집단마을 관광자원 개발’공모에 최종 선정돼 하회마을에 버금가는 전통체험마을로 조성된다.

소산마을은‘뿌리찾기 체험장’으로 조성된다. 삼구정과 역동재·삼소재·양소당 등을 둘러볼 수 있는 탐방로를 개설하고 안동 김씨 대종택인 양소당 앞에 전통 우물각을 복원하고 정자를 세운다. 이 마을 출신 대과 급제자 9명을 기념하는 솟대도 복원한다.

오미마을은 ‘정신문화 체험장’으로 꾸며져, 이 마을의 대대로 내려온 정신을 계승한다. 또 사라진 봉황려를 복원하고 7개 문화재와 향토유산, 오미마을 뒷산인 죽자봉을 따라 오미둘레길도 조성된다.

소산마루 청원루.
△ 풍산읍을 빛낸 인물들

안동 시내와 도청신도시 길목에 자리 잡은 풍산읍은 풍요로움과 평안을 주는 고장이다. 넓게 펼쳐진 풍산 들은 모든 사람을 끌어 안는다. 산골짜기 마다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어 충절과 학문이 빛나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 동백림 사건을 맡았던 이준승 대법관은 하리 출신이다. 이후 그는 중앙선관위 위원을 7년간 역임했다.

1957년 제일은행에 입사해 은행장에까지 오른 송보열 씨는 만운리 출신이다. 그는 금융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전 삼성서울병원장 송보열 원장이 그의 자제다. 처 김정묵 여사는 서예가로 신사임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리 출신인 이낙선 씨는 1963년 육군 대령 예편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66년 초대 국세청장을 거쳐 상공부, 건설부 장관을 역임했다.

회곡리의 권영백 씨는 법제처에 근무하다 동아일보, 경향신문 논설위원을 거쳐 중앙정보부 1국장을 역임했다.

매곡리의 남상조 씨는 선광기술 분야 한국의 제1인자로 인정받았다. 현 풍산고의 창설 멤버인 그는 대한중석 제품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 크게 기여해, 196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금탑산업훈장(4호)을 수상했다.

1994년 출범한 재경 풍산읍향우회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초대 이명걸 회장(대명전기 대표)을 중심으로 현 임영인 회장에 이르기까지 향우회 회원 단합과 고향발전에 헌신하고 있다. 이준석(예일회계법인 고문), 이규혁 회장(명문제약 대표),이삼걸(전 행안부 차관),김철현(에코프렌드건설 사장), 김승년 변호사, 김두현((주)중일 대표이사) 등도 향우회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김기년 전 안동교육장, 임주재 전 주택공사 사장, 권영호 전 안동문화원장, 김상규 풍산읍 초대읍장, 송세열 전 대우상선 사장, 김원재 전 도산서원 원장 등이 풍산읍 출신이며, 정양호 조달청장, 반병목 전 문경 부시장, 배용수 고령 부군수, 김현승 안동시 경제산업국장, 권기준 변호사 등도 풍산읍 출신이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