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 쓰이는 경운기와 연결한 트레일러에 농작물을 싣고 운반하던 중 사망사고가 나면 경운기를 작업기계로 봐야 할까. 교통수단으로 간주해야 할까. 무엇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보험금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최근 판례가 그렇다.

참외농사를 짓는 김모씨는 지난해 6월 9일 오후 5시 50분께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트레일러가 장착된 경운기를 운전했고, 참외를 실으려고 비닐하우스 앞 도로에서 비닐하우스까지 연결된 내리막길에서 후진으로 운전해 내려가다가 경운기의 앞바퀴가 내리막길 옆 경사로로 이탈했다. 김씨는 경운기 보조 손잡이와 전봇대 끼는 사고를 당해 숨졌다.

2주 뒤 숨진 김씨의 아들이 보험회사에 약관에 규정한 교통상해사망 보험금 1억 원과 7년간 매월 300만 원씩 교통상해사망유족자금 지급을 청구했다. 기타교통수단인 경운기를 운전하다가 급격하고도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상해를 입어 숨졌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내세웠다.

보험회사는 지급을 거절했다. 2013년 7월 31일 계약을 체결한 운전자보험의 특별약관에 ‘농업기계가 작업기계로 사용되는 동안에는 기타교통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는데, 수확물의 운반을 위해 작업기계로 사용했기 때문에 해당 경운기를 기타교통수단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달아서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대구지법 안동지원 민사부(최경환 부장판사)는 6월 29일 숨진 김씨의 아들이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보험사는 1억 원을 지급하라”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특별약관에서 기타교통수단에 농업기계를 포함한 취지를 고려하면 엔진과 바퀴 두 개로 이뤄진 동력경운기에 트레일러를 장착한 사고 당시 경운기는 작업기계로 사용됐기보다는 통상적인 교통수단의 기능을 수행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만약 사고 당시 경운기를 작업기계로 본다면, 농산물을 실어 운반하기 위해 트레일러가 연결된 동력경운기를 운행하는 것을 ‘작업기계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되고, 이 경우 동력경운기에 연결된 트레일러에 농작물을 실은 상태에서 일반도로를 주행 중 사고가 나더라도 그러한 동력경운기의 운전행위 역시 ‘작업기계로 사용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나온다”면서 “보험사도 적재한 농산물을 최종 목적지까지 운반하기 위해 경운기를 일반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교통수단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민 대구지법 공보판사는 “경운기는 농업기계로 기타교통수단으로서 운전자보험이 가능하다”면서 “그런데도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상당한 선례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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