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을 먹으러 칼국수 집에 갔다. 영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테이블은 거의 비어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나처럼 늦은 식사를 하러 온 가족이 앉아있었는데 아무래도 친정엄마와 딸과 손녀인 듯 보였다. 어린아이는 서너 살쯤 되어 보였는데 숟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서 어른들을 곤란하게 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손녀가 나란히 앉고 딸은 맞은 편에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손녀를 어르고 달래며 사이사이 밥을 한 숟가락씩 먹이고 있었다. 딸은 맞은 편에서 열심히 국수를 먹고 있었다. 친정엄마는 딸을 그윽이 바라보며 천천히 먹으라는 눈짓을 보내
얼마 전 간호법 제정 궐기 대회가 있어서 부산엘 다녀왔다. 날씨가 제법 추웠던 날이라 툭툭한 옷을 입고 갔는데도 두 시간여를 앉아있는 동안 엉덩이가 땅바닥에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빌딩 숲 사이에 있던 광장이라 응달이었고 더욱이 스무여 명의 집행부 위원들은 삭발까지 한 상황이라 모두의 몸은 얼어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뭉클했던 것은 1만여 명이 모인 그 자리에서 추워서 못하겠다는 등의 불평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고 자리를 뜨는 사람도 없었다. 한목소리로 얼어붙은 허공을 녹였으며 한목소리로 간절하게 꼭 들어야 할 사람들의 귀로
‘나는 사망의 순간까지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 나는 아무리 상황이 변할지라도 희망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나는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나의 방식대로 느낌과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나는 외롭게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나는 고통 없이 죽을 권리가 있다. 나는 평화롭고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이것은 임종환자의 권리장전 중 일부이다. 평균 수면이 늘어나고 노년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 길어지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대비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갑작스레 맞는 죽음과 달리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맞는 죽음은 준비의
얼마 전 해안 둘레길인 ‘호미곶 가는 길’을 다시 걸은 적이 있었다. 그곳은 이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해안선과 바다 위로 걸을 수 있도록 데크로 만든 길이 멋진 곳이다.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의 바다와 새롭고 특별한 무엇인가를 하나씩 발견하곤 했는데 이번 산책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자디잔 돌멩이들이었다. 그 해안에는 울퉁불퉁하고 제각각의 모양을 한 디딤돌이 나름 정렬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태풍 이후 어디에선가 옮겨져 온 것인 듯 보였다. 그 외에 물가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곳이 군데군데 있었고 그곳에는 모래알 같은 자갈돌이 차르륵차르
이른 아침, 앰뷸런스 소리가 아파트단지의 정적을 깨웠다. 일찍 깬 사람들 몇몇이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기온이 내려가 싸늘한 아침 공기 속, 고개를 내민 사람들 사이에 걱정스런 눈빛과 몇 마디의 말이 오갔다. 귀에 닿기도 전 허공으로 사라지는 말이었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어디에서든 앰뷸런스 소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그 소리는 대부분 응급상황을 알리는 소리이며 불편과 불안을 주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고 알 수 없는 누구이든 큰일이 없기를 기원하게 한다. 특히 아파트단지 안으로
고대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말, ‘우리는 같은 강물에 손을 씻을 수 없다.’ 세상은 변화하는 그 자체이며 그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을 그는 로고스(Logos)라고 불렀다.로고스는 어떤 것을 움직이는 원리이자 법칙이며 논리 등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에게도 사람을 움직이는 원리나 법칙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평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특히 사랑에 대한 약속이나 우정에 대한 맹세가 그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분노하기까지 한다.
지난 주말 동네의 한 카페 정원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재즈그룹의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대였다. 커피를 마시러 왔던 사람들은 특별대접을 받기라도 하는 듯이 들뜨게 앉아서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보컬의 목소리는 여렸고 악단도 최소한이라 작은 정원 밖으로 소리가 새나가지도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소리가 너무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기까지 한 무대였다. 그런데 전체 무대가 끝나기도 전 갑자기 악기들을 실내로 옮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비가 오나 보다, 생각했던 손님들이 곧 근처 주민의 신고로
아침저녁으로 완연한 가을 날씨다. 하늘은 높아졌고 들판은 어느새 초록을 벗고 결실의 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과 자연스레 가을이 왔다는 말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만지고 싶을 만큼 햇살이 시원해졌다. 혹시나 하고 미루어뒀던 여름옷을 이제 정리해도 될 것 같다. 이렇듯 자연은 참 오묘하다. 제가 와야 할 때를 알고 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온다. 어김없이….최근 태풍이 우리 지방에 큰 피해를 주고 갔다. 공단지역은 쓰러진 담장을 세우지 못했고 무너져 내린 집도 아직 그대로다. 강바닥은 떠내려온 흙들
현재 세계인구는 80억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나라 인구는 5000여만, 그중 포항의 인구는 50여 만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 이들이 살다가는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발자취가 남을까. 만약 누구나 생애 단 하나의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게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많은 흔적으로 가득 차게 될까.사람은 자신이 살다간 흔적을 자의든 타의든 남기게 마련이다. 그것은 유형이나 무형의 흔적일 것이다.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고 발전에 기여한 사람은 그 순간의 명성을 남길 것이고 예술가는 각자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을 남길 것이다. 사회활동이나 예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시원해졌다. 밤새도록 틀었던 선풍기를 꺼도 전혀 덥지 않다. 나는 이상하게도 찬바람이 느껴지면 그 순간부터 마음이 끝을 알 수 없는 심해를 헤매는 듯 막막해지곤 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서슬 퍼런 그곳, 발이 닿지 않아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야 할 것 같은 그곳, 가을이 시작되기도 전 내 마음은 벌써 가을 앓이를 시작하는 것이다.나는 오랫동안 가을이라는 계절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싱싱하던 꽃이나 나뭇잎이 땅속으로 스러져가는 모습이 한 삶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내 삶도 그것들과 다
여름 휴가철이면 물놀이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 등이 꼭 뉴스에 등장한다. 매스컴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왜 저런 위험한 곳에서 물놀이를 했을까. 한 사람이 빠지면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나머지 사람을 구해야지, 위급상황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등의 안전수칙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지난 주말 나는 아이들과 포항신항만 쪽에 물놀이를 갔다. 큰아이는 구명조끼를 입었고 작은아이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겠다고 하여 얕은 곳에서 놀기로 하고 바다로 들어갔다. 그날따라 파도가 좀 커서 간간이 큰 파도가 밀려올 때면 몸이 저
고등학교 시절, 나와 오랜 기간 짝지로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키가 비슷해서 3년 내내 옆이나 그 근처에 앉곤 했다. 성격이 밝아서 큰소리로 까르르 잘 웃고 친구들의 이야기에 반응도 적극적이라서 어디에서든 누구하고든 자연스럽게 잘 섞여 지내던 친구였다. 반면 나는 성격이 좀 소극적이라 내 자리를 별로 뜨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기만 할 뿐 박장대소하며 맞장구 칠 줄도 몰랐다. 그러면 그 친구가 내 자리로 와서 다른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이것저것 들려주기도 하고 자기가 생
최근 7번 국도나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를 지날 때면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유난히 많이 보게 된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듯 사지를 버둥거리는 짐승에서부터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사체까지, 시외로 운전할 때면 어김없이 한두 번씩은 보게 되는 광경이다.그런데 지난 휴일에는 시내 4차선 도로를 지나다가 아직 선혈이 도로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짐승의 사체를 보았다. 같이 탄 사람들은 끊어진 목숨에 대한 안타까움에 혀를 차다가 고양이다, 족제비다, 아니다 오소리 같다 등 무슨 종류의 동물인지로 관심이 쏠렸다. 그 이유는
학기가 끝나고 난 후 학생들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재능기부 사랑봉사단’이라는 명명하에 보건계열의 학생 스무 명이 중심이 된 활동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대부분의 활동이 축소되거나 취소되었던 터라 오랜만에 행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들떠 있었고 인솔하는 책임자들은 과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상황까지도 대비해야 했으므로 마음이 분주했다. 학생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하고 자신들의 역할을 정확히 배분하고 있었기에 진행은 매끄러웠으나,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려면 최대한의 장비를 챙겨서 들고 가야
며칠 전 친오빠의 정년퇴임 기념식에 다녀왔다. 전에는 간혹 그런 자리가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로는 축하해주고 위로해주어야 할 행사들이 대부분 사라졌었다. 그런데 조촐하게 마련된 퇴임 기념식은 참으로 오랜만에 가진 뜻깊은 자리였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퇴직을 했거나 정년에 가까운 사람들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떤 행사장보다 분위기가 정돈되어있었고 너스레를 떨거나 과장되게 떠들어 분위기를 무너뜨리는 사람도 없었다. 식장의 옆방에는 아이의 돌잔치가 있는 듯 음악 소리와 사회자의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내 방에 온 지 제법 오래된 다육식물이 있다. 잎이 큰 별처럼 생겼는데 다육식물의 특징이 그러하듯 자라는 것을 보기도 힘들고 꽃이 피는 걸 보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멈춰있는 듯 보이다가도 어느새 줄기가 화분 위로 올라와 고개를 늘어뜨리고, 좀 자라는가 싶어 들여다보면 언제나 제자리인 오묘한 식물이다. 물을 자주 줄 필요도 없고 햇살과 바람만 충분하면 잘 자란다고 하여 초보자인 나도 겁 없이 키울 수 있겠다 싶어 들여왔는데, 시시때때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날도 무심코 들여다보고
‘선생님, 전 오늘 좀 일찍 출근했어요. 그래서 음악 들으면서 여유를 누리고 있어요. 전 최근 조금 우울해서 기분전환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갱년기 증상 때문인가 봐요.’‘갱년기라 생각하는 순간 갱년기가 되고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우울하기 시작해요. 모두가 자기가 만든 뱀에 물리는 거래요.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되도록 멀리 내다보고 주위를 돌아보세요.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가장 확실한 행복의 길이래요. “아, 내가 나쁜 꿈을 꾸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 봐요. 세상에서 마음의 평
한 때 3D직업이라 일컬으며 기피하던 직업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제조업, 광업, 건축업 등의 직업으로 지저분하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일을 하는 직업이었다. 그렇지만 이 직업군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3D 직업’이라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 있다.공장에서는 쉬는 날이면 기계를 멈출 수 있고, 사무실에서는 일손을 멈추고 서류를 덮을 수 있다. 식당은 쉬는 날을 정해 문을 닫을 수 있고 학교는 공휴일에는 수업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병원은 다르다.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밤이라 해서 아프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때의 일이다. 나는 물과의 사투를 벌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멈추는 순간 금방 물에 가라앉을 것만 같아서 잠시라도 팔과 다리를 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잘 나아가는 것도 아니었고, 가라앉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오래 수영을 한 사람들은 25미터 정도 되는 레인을 단숨에 헤엄쳐가고도 힘들어하지 않았지만 나는 절반도 채 못 가 멈추기가 일쑤였다. 이상한 것은 잘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진행은 더 느려졌고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울상이 된 나에게 강사가 한마디 툭 던졌다. “힘을 빼야 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고립될 때가 있다. 외딴 섬처럼 깜깜한 망망대해에 둥둥 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느라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누구 없느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는 공간에 홀로 서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그야말로 나 이외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고립의 순간을 애용한다.고립이라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립이라는 말보다는 은둔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고립이든 은둔이든 그 의미의 그릇에 빠질 필요는 없다. 의미는 자신이 선택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