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리얼리스트구만.”오래전 일입니다. 젊어서 직장 근처에서 하숙을 할 땐데, 같은 방을 쓰던 직장 동료가 잠들기 전에 불쑥 그렇게 말했습니다. 동거(同居)한 지 몇 달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쪽이 조금 연상이어서 호형호제하던 사이였습니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결국 몇 개의 이름을 얻느냐로 가늠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여태 리얼리스트란 이름은 처음이었습니다. 내 평생에 그런 평가는 처음 들어보는 거였습니다. 그 반대말을 알아야 제대로 뜻이 잡힐 것 같았습니다. 리얼리즘이란 말이 주
영화 ‘살인의 추억’. 198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 젊은 여성들에 대한 연쇄 강간 및 살인 사건을 재조명한 범죄스릴러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메가폰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 영화 속 화성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느닷없이 이 영화를 호출해 본다. 지난 3월에 있었던 한일정상회담으로 받은 상처 탓이다. 보름이 지났지만, 허탈함과 불쾌함을 넘어 분노감까지 치솟는다. 석연찮은 회담 추진 과정과 흉흉했던 회담 의제와 방향성에 대한 우려와 소문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국익과 함께 국민적 자존심에 큰 구멍이 뚫리고
언젠가 과거 정부에서 국가 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했던 분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국정 전반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모든 일을 막연하게 비판만 하기보다 적절한 해답을 찾는 데 앞장서는 실용적 합리주의자라는 평가를 듣는 유명 인사였다.그런 훌륭한 인물과 얘기 나누던 그 무렵은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경제는 말할 것 없고 다른 분야도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사태의 원인을 두고서는 글로벌 요인 때문이라는 쪽과 내부 요인 때문이라는 쪽이 서로 갈라져서 갑론을박했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는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설립 이전인 1981년부터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와 안동문화방송의 주관으로 ‘이육사 백일장’이 개최되었고, 1995년부터는 ‘이육사 선생 추모 문학 심포지엄’이 안동문화회관에서 열리기 시작하면서 이육사와 그의 문학에 대한 세미나, 추모제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94년에 이육사기념사업회가 창립된 영향도 있었겠지만, 1995년 당시 문화관광부가 7월의 인물로 이육사를 선정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이육사에 대한 대내외적인 관심이 증폭되었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국비 6억 원
젊어서는 지금의 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제법 친구도 많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곳도 꽤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 젊은 직장 동료(새로 부임한 신임 교수였습니다)로부터 꽤나 당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처럼 늙고 싶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루는 그렇게 말하는 거였습니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 것 같은데 별로 듣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선 “너는 늙었다”는 게 싫었고, 본받을 게 없어서 무위도식하는 것을 본받겠다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냥 웃어주고 말았습니다.잘 모르는 남들이 보면 제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 말은 단지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회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형성이 되며, 이 관계는 의사소통이라는 인간행동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행위를 유발시키는 인간행동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심리적 행동기제가 작용함으로써 가능한데 이 심리적 기제는 태어나면서부터 받는 주변환경의 영향에 의해 발달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외부적인 환경 요인에 의해 발생적 동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선천적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 욕구에 따른 행동은
2023년 신년을 거리에 특이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니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거리 곳곳에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내걸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드나드는 학교 정문 근처에도 보기에 민망한 내용의 정당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있었다. 처음에는 선거철도 아닌데 웬 정당 현수막이 요란스럽게 많이 걸렸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시간이 가도 현수막이 사라지기는커녕 내용을 바꾸어가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보통 현수막은 불법으로 내건 현수막이 아니라면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걸 수
지난 2022년 12월, 뉴질랜드는 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법정 흡연 가능 연령을 매년 상향 조정하여, 2008년 이후 출생자에 대해 담배나 관련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2009년 1월 1일 출생자부터는 담배를 구매하는 것이 평생 금지되어 있다. 이들에게 담배를 판매할 경우, 형사제재의 대상이 되어 최대 15만 뉴질랜드 달러(한화 약 1억2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는 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인구수가 매년 감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담배
어릴 때의 궁금증 중의 하나가 ‘복음(福音, the gospel)’이라는 말의 의미와 그것의 전승 방식이었습니다. 우선 왜 그 내용이 복음이라고 불리어야 하는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성서의 앞부분에 나오는 네 복음(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존재도 좀 이상했습니다. 어린 독자가 보기에 그 네 복음은 거의 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회개하라!”고 외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네 번씩
새삼 던질 필요도 없는 질문일 것이다. 근데 사람들의 대답은 의외로 싱겁다. 추리면, 결국은 더 많은 그리고 보다 나은 기회가 있다 정도다. 두루뭉술하긴 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격하게 수긍한다. 아니 수긍할 수밖에 없다.서울이 더 많은 그리고 보다 나은 어떤 기회를 제공해 줄까? 교육과 취업, 금융과 부동산, 의료와 보건, 문화 기반과 다양함, 교통과 이동의 편익, 선진적이고 글로컬한 제도와 정책…. 무엇하나 비교우위가 없는 지방으로선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는 인간과 삶의 조건들이다. 획득한 기회에 따르는 비용을 생각하라. 서울
두어 해 전에 일본 출신 여성 방송인이 비혼 출산 사실을 공개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결혼하지 않고 해외로부터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한다는 것이 헐리웃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가 된 후에는 육아예능 출연 소식까지 전해져서 다시 논란이 일었다.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출산한 비혼모(非婚母)가 공영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은 대중에게 올바르지 못한 결혼관과 가족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여러 해 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하는 한국 출신 여성이 그곳의 결혼제도와 출산정책을 소
스마트폰은 뉴미디어의 시대를 열었다. 신문, 잡지, 책 등 인쇄출판 미디어와 라디오, TV 등의 전자미디어로 대표되는 올드 미디어는 이제 구시대의 산물 또는 레트로 감성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수집품이 되어가고 있다. TV도 책도 잡지도 스마트TV나 전자책, 웹진과 같은 뉴미디어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전국에 인터넷망이 설치되고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이 교류할 때만 해도 스마트폰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소통할 수 있었지만, 막상 그들은
행동경제학에서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실험을 한다고 합니다. 이 실험에서 살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어느 선까지 조절할 수 있는가?”입니다. 실험자는 피실험자 A에게 돈 10만 원을 주고, 자신의 뜻대로 그중 일부를 피실험자 B에게 주도록 합니다. B는 A가 주는 금액을 받을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데, 만약 거부한다면 A와 B는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지 1만 원이라 하더라도 B는 돈을 받는 것이 이를 거부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그러나 여러 문화권에서
근대 대학의 효시는 베를린대학이다. 현재는 훔볼트대학으로 불린다. 베를린대학은 프로이센의 문화교육부 고위공무원이었던 빌헬름 폰 훔볼트가 1810년 당시 프로이센 개혁의 일환으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명을 받아 설립을 하였다. 훔볼트는 이전의 대학이 강의중심이었던 대학체계를 강의와 연구가 결합된 새로운 기능을 갖는 컨셉으로 구상하였다. 이렇게 해서 당시 이전의 대학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베를린대학은 오늘날 대학의 전형이 되었으며 근대 대학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대학을 방문하면 교수가 상주
며칠 전에 대구협동조합지원센터에서 협동조합 경영공시와 관련된 교육을 한다고 해서 교육을 받으러 갔다. 개인적으로 경제교육 관련 사회적 협동조합의 이사장 직책을 맡고 있다. 협동조합법에 따르면 개별 협동조합은 회계연도가 종료되고 3개월 이내에 조합원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경영공시를 해야 한다. 우리 협동조합도 경영공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필요가 있었다.교육장에 갔더니 생각보다 많은 관계자들이 와 있었다. 그중에는 소위 MZ세대에 속하는 젊은 세대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최근에 사회적 경제가 강조
지난 6일 윤석열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제3자 대위변제”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을 천명했다. 한국 정부는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판결금을 지급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물론 피해자 단체와 야당 측은 가해 전범 기업의 사죄와 배상 참여도 없는 한국 정부의 해법은 ‘굴욕적이며 몰역사적’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은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밝
법으로 다스리기 가장 어려운 대상은 아마도 ‘욕망’의 영역일 것이다. 사적 개인이 자신의 자유로운 반경 안에서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을 법이 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때, 법리 해석과 정책 실행에 있어서 여러 가지 곤란한 사정이나 딜레마의 상황을 맞부딪히게 되곤 한다. ‘불법’으로 규정된 도박이 허용된 ‘합법’적 공간인 강원랜드는 아마도 이러한 딜레마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강원랜드 카지노를 관광차 방문하게 되었다. 따져보면 대한민국 국민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갬블러(gamble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혼창통(魂創通)』(이지훈)이라는 자기계발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본전산’의 행동지침입니다. 저도 제 인생에서 이런저런 ‘혁신(革新)’의 요구가 있을 때 늘 먼저 실행한 것이 “즉시 한다”였습니다. 그것 하나로 생존능력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몸쪽에서 저항이 많이 왔습니다. “나중에 하자”, “좀 편하게 살자”라는 요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고비가 있는 법, 몸의 관행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습니다. 제일 먼저 공부 시간을 늘렸습니다. 혼자서
오늘로 참사 129일째다. 서울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다수의 핼러윈 인파가 골목에 몰리면서 300명이 넘는 압사 사상자가 발생했다. 어김없이, 2014년 4월 16일의 기억 채널로 돌아갔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에 오른 여객선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던 그 참사 말이다. 승객 30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그렇다, 세월호 참사 8년하고도 6개월여 만에 다시 이태원 참사다.‘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잊지 않겠다!’ 세월호 참사 당시 온 국민 가슴에 아로새긴 각오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성싶었다.
인도 대도시의 하루는 채소 도매시장으로 향해 가는 장사꾼 리어카 소리, 신문 배달부 자전거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이른 아침이면 스테인리스 그릇 들고 우유 가게 앞에 줄 선 사람들 웃음소리도 들린다. 집안에서 손님을 맞아야 하거나 음식 장사하는 이들은 우유가 많이 필요하니까 봉지째 사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몇 루피씩 돈 액수만큼 산다. 서민들은 늘 즐겨 마시는 인도식 밀크 티 ‘짜이’를 만들기 위해 우유가 필요하다.짜이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유를 펄펄 끓여서 식히면 막이 생기는데, 그것을 걷어낸 후 다시 한 번 더 끓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