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는 뿔 자랑 마라 뿔없는 나도 하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나는 마음속 허공 내려놓고 모든 그림자 들이박는 힘센 뿔 하나 갖고 싶었다 뿔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이박고 싶은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아마 너에게도 그때 너가 나에게로 왔다 아무데나 가지 않고 아무데서나 숙이지 않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이 시에서의 뿔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무기로서의 뿔이 아니다. 천양희시인의 '시의 ...
잠결에 시가 막 밀려오는데도, 세계가 오로지 창(窓)이거나 지구라는 이 알이 알 속에서 부리로 마악 알을 깨고 있거나 시간이 영원히 온통 푸르른 여명의 파동이거나 하여간 그런 시가 밀려오는데도, 무슨 푸르른 공기의 우주 통과하지 못하는 물질이 없는 빛, 그 빛이 만드는 웃고있는 무한 온몸을 물들이는 무한, 하여간 그런 시가 밀려오는데도 나는 일어나 쓰지 않고 잠을 청하였으니...... 시인이 잠결에 본 시는 푸르...
화엄이란 구멍이 많다 구례 화엄사에 가서 보았다 절집 기둥 기둥 마다 처마 처마 마다 얼음 송송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그 속에서 누가 혈거시대를 보내고 있나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개미와 벌과 또 그들의 이웃 무리가 내통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화엄은 피부호흡을 하는구나 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 환하게 뚫려있구나 (중략) 시인은 절집 기둥과 처마에 송송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개미와 벌이 서로 소...
부신 햇살을 타고 어느 먼 풀밭이 문득 내 눈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풀꽃만한 나비 한 마리가 그 속을 종일 날고 있다 (중략) 어느날 내가 바르트의 텍스트를 펼쳤을 때 그는 문득 날아와 다시 어룽대기 시작했다 더듬이를 비비고 은빛 날개를 턴다 행간이 뿌옇다 흰 벽 같은 세상과 마주할 때, 흔들리는 길 위에 있을 때 그는 나와 그것들의 행간에서 어룽거렸다 나는 그를 검열하는 어룽나비라고 부르기로 했다 환시 현상을 시인은 자신의 눈 속에 나비가...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 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정완영 선생의 작품 속에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는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최고이면서 엄마 목소리를 통해 듣는 아이들이 정신이 자라고, 몸이 자라고, 꿈이 자라고, 지혜가 자라나는 것이다. 요즘TV를 통해 세계 오지마을 부족들의 생활 모계씨...
친구가 길에서 말의 발걸음 서서히 늦추며 다정히 내 이름을 부를 때 아직 갈지 못한 둔덕을 바라보며 웬 일인가? 소리쳐 묻지 않는다네 우리에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으니까 부드러운 땅의 가슴에 괭이자루를 세워두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돌담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온다네 우리에겐 좀처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전적으로 부족한지도 모른다. 친구가 없으니 이야기는 점점 메말라가고 온정이나 의리 같은 말들도 사라져 간다. 피곤한 하루해가...
찰칵, 낙엽을 꺼낸다 아직 핏기 마르지 않은 부고 한 장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려 고양이, 라고 읽으며 1280×960 파인더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순식간에 지나가는 한 컷 고양이가 껍질 벗긴 장어 한 마리를 훔쳐 물고 달아난다 명산장어에서 한 칸 공터를 지나 오동도횟집까지 햇살을 파닥이며 바람이 재빨리 불고 간다 피복 벗겨진 고압선처럼 몸에서 꺼낸 한 줄기, 그림자가 시뻘겋게 감전되는 오후 1시 30분 저기 한 칸 빈 주머니에 지-지-직 섬광이 지...
꽃들이 피다 만 밤 서쪽 하늘의 별이 된 공원의 늙은 악사, 그를 따르던 100마리의 고양이들이 긴 긴 밤의 강을 건너옵니다 등으로 켜는 아코디언, 꼬리뼈 끝부터 시작되는 첫 음에서 목과 정수리로 이어지는 끝 음까지 생기 넘쳐나는 척추의 연주 자목련 위에 늙은 별 하나 반짝반짝 온몸으로 박수 칩니다 별빛이 어슴푸레 강에 비춰지는 밤, 고양들이 강을 건넙니다. 고양이는 강물 위로 등과 눈을 내민 채 아코디언처럼 움직입니다. 그러자 비로소 그 풍경이 음악이 됩니다. '등...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鶴처럼만 여위느냐. 첫 작품집 '채춘보'(採春譜·1969)에 실린 작품 '조국'(祖國)은 1962년에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됨으로서 우리...
낮아져라 낮아져라 더욱 더 낮아져라. 외치고 외치면서 목소리를 낮게 가라앉힌다. 어쩌면 울음소리처럼 들리며 때로는 웃음소리로 세상을 설득하고 있다 김점순 시인은 구룡계곡 물소리를 통해서 남(他人)을 위해 봉사하는 손길은 내 자신이 낮아지지 않으면 봉사할 수 없고 헌신할 수 없음을 직설적인 기법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좋은 작품이다. 아주 쉬우면서도 독자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휘어잡는다. 詩는 어려운 철학이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 살아 꿈틀거...
어찌타 전국토가 괴뢰에 유린당하고 바다를 등지고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보루 형산강은 알리라 진퇴양난의 절박함을 풍전등화 국운이 백척간두 있을 적에 절체절명 기로에서 특전대의 투혼은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적개심 불태웠네 파죽지세 괴뢰군은 최후까지 발악하나 용맹스런 특전대가 살신성인 정신으로 그 여세몰아 형산강 도하작전 성공하였네 형산강에서 구국간성 2301 위의 희생으로 포항탈환 성공하여 반격의 근간되었네 그 신화적인 무용담을 형산강아 말해다오 ...
지렁이가 말한다 말보다 애틋한 몸짓으로 사랑해요 (꿈틀) 당신을 사랑합니다 (꿈틀, 꿈틀)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꿈틀, 꿈틀, 꿈틀) 가슴이 아려온다 어찌 저것을 미물이라 하랴 입 달고도 말 못하는 내가 미물이다 정유찬의 작품 에 대해서, 필자는 이 작품을 매우 인상적(印象的)이고 사랑에 대한 깊은 고백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에 감동(感動)을 받는다. 지렁이가 꿈틀 꿈틀 하는 것이 하나의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
정암사 들르니 저녁 예불 올리는 범종(梵鐘)이 울고 있다. 무거운 마음 벗어 놓고 바쁜 발길도 내려놓고 내 마음 속 허허한 일들을 다 벗어 던지고 싶다. 정암사 적멸궁 앞에서. 김점순 시인의 작품 는 정암사 범종소리를 듣는 순간 이 세상살이 속에 찌든 나 자신을 이 작품을 통해서 훌훌 다 벗어 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태백산 정암사는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이라서 정암사 적멸궁 고찰 안에는 부처가 존재하지 않는다. ...
매양 오던 그 산이요 매양 보던 그 절인데도 철따라 따로 보임은 한갓 마음의 탓이랄까 오늘은 외줄기 길을 낙엽마저 묻었고나. 뻐꾸기 너무 울어 싸 절터가 무겁더니 꽃이며 잎이며 다 지고 산 날이 적막해 좋아라 허전한 먹물 장삼을 입고 숲을 거닐자. 오가는 윤회의 길에 승속이 무에 다르랴만 沙門은 대답이 없고 행자는 말 잃었는데 높은 산 외론 마루에 기거하는 흰구름. 인경은 울지 않아도 山岳만한 둘레이고 은혜는 뵙지 않아도 달만큼은 둥그느니 문듯 온...
구름도 끼지 않았는데 세상이 어둡기만 하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어두워 지고 있다. 안경을 바꿔 써 봐도 불을 켜도 자꾸 어둡다. 이종훈 시인의 작품 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현 세상의 어지러움을 생각하게 한다. 정치적인 어지러움, 서민의 경제적인 어려움, 신문 사회면의 모든 비리와 불안함, 기상악화와 공장 폐수, 환경오염문제, 군사적인 어려움, 등 많은 두려움을 보면서 소수민의 청정한 삶의 그림자가 언제 이 세상을 ...
배바우는 언제나 변함없는 얼굴이다 하늘과 구름이 있는 그 구름 위에 솟은 산봉우리들과 세상사는 이야기 나누다 늘 날이 새고 날이 저문다 어렵사리 보릿고개 살아온 지난날들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갈기갈기 찢어진 세월을 구김살 없는 거울로 배바우는 앉아 있다 남용술의 作品「화왕산·43」 전문으로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psychic distance)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지니고 있는 톤(Tone)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음도 또한 느낄 수 있다. ...
세상 살다 어렵잖게 미운 마음 생길 때면 물에 잠긴 고향마을 나도 몰래 찾아간다. 칠렁한 검은 물 속에 정이 보이기 때문이다. 생각 잖게 언짢은 일 생겼을 땐 고향엘 간다. 다독이고 위로하며 마음을 주고받던 정 못 잊어 물 속 보려고 고향엘 간다. 어쩌다 슬픈 일이 생겼을 땐 고향엘 간다. 한마을 숨죽이고 같이 울던 따뜻한 정 그리워 물 속 보려고 고향엘 간다. 이종훈 시인의 고향은 제천시 한수면이다. 3수1...
화왕산은 굽이치는 물결 넘실거리며 달려오는 파도 같다 밀리고 밀려가는 햇살과 바람에 열린 살 검게 절이고 삭인 강물의 한 굽이 수묵 빛으로 흐르는 것은 세월 탓만은 아니다 북각봉에서 배바우봉까지 그 유유한 물결 타고 등성이 유영하던 천진한 생활의 어깨 너머로 오손도손 주고 받던 따뜻한 그날의 한 때 사랑을 바라본다. 그리움이 다함 없는 아픔으로 굽이치는 물결의 화왕산은 넘실거리며 달려오는 파도 같다. 남용술의 작품 '화왕산 ...
지렁이가 말한다 말보다 애틋한 몸짓으로 사랑해요 (꿈틀) 당신을 사랑합니다 (꿈틀, 꿈틀)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꿈틀, 꿈틀, 꿈틀) 가슴이 아려온다 어찌 저것을 미물이라 하랴 입 달고도 말 못하는 내가 미물이다 (감상) 정유찬의 작품 에 대해서, 필자는 이 작품을 매우 인상적(印象的)이고 사랑에 대한 깊은 고백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에 감동(感動)을 받는다. 지렁이가 꿈틀 꿈틀 하는 것이 하나의 바디 랭귀지 (body la...
빨간 유혹이 탐스럽다. 울도 담도 없는 과수원 여름 햇살 흠씬 배인 사과 한 입 배어 물면 싱그런 교성(嬌聲)이라도 터질 듯 범하고 싶은 화냥끼 눈으로 실컷 따먹고 빈 입 다시고 나니 허기가 느껴진다. 농익은 열정 몰래 마음으로 훔쳐 품은 죄목은 무엇일까 교태 묻어나는 빨간 유혹 드레드레 바람 타는 풍경 두고 오는 길 영주 사과밭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감상) 최정규의 작품은 년 전 때에 삼척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