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버린 굽과 구두 밑창을 뚫고 들어오는빗물, 흙먼지 그리고 가끔의 바람길을 걷다 돌아오면 발바닥이 시큰거렸다매일 돋아나는 상처를 외톨이처럼 키우며일 년에 한두 번씩 구두창을 갈았다 그때마다한 움큼의 세월이 고린내를 풍기며 혀를 날름거렸다타인의 사무실에서 인파속의 거리에서 후미진 골목길에서구두 속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던무언가 썩어가는 냄새나를 데리고 다닌 날들의 흔적너무 가까우면 잘 보이지 않는 법이지사랑도 우정도 그리고 미움마저도흐려질 대로 흐려져 버린 세월은이제 구별을 하지 못하네누구도 상관없이 가깝거나 혹은대수롭지 않은 사이
어머니는 멀리 가셨다고 말했다가먼 데 가셨다고 고쳐 말한다돌아가신 아버지를 찾는 전화다멀다, 라는 말은 참 유용하다멀면 갈 생각을 않거나체념하기 좋은 거리이니까알고 보면 사람들은 그 먼 곳에자신을 영영 숨기거나 체념을 맡기곤 한다아버지 친구분은 돌아오는 날짜가 있는 먼 곳을 묻고어머니는 돌아오는 길이 없는 먼 곳을 설명하느라통화가 길어진다그 사이, 멈칫거리던 곳은소실점 하나를 뚝 끊고 사라진다어머니는 먼 곳으로 가고 있고아버지 친구분은 자꾸만 이곳으로 오고 있고너무 멀어서 안 돼, 라는 말처럼너무 아득해서 언제까지 따라갈 수 없는
“운명하신 게 아닙니까?”적문의 목소리는 떨렸다. 명주수의를 입고 떡갈나무 관 속에 누워있는 노인의 눈이 가늘게 움직였다. 노인 아내가 손등으로 콧물을 닦으며 적문에게 다가왔다.“스님, 우리 집 양반이 어찌나 조르던지 스님을 모셨심더. 결례라는 것도 알지만 우야닌 교. 꼭 그만한 사례는 각오하고 있심더.”그러자 숯 검댕 묻은 아들도 다가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적문은 한걸음 물러서서 난감해하는데 노인이 번쩍 눈을 떴다.“스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살아있는 매일이 심심 함니더. 한번 죽어보자고 결심했고 죽고 나면 어떻게
볼록한 젖 몽우리 부풀고 부풀더니불꽃처럼 활짝 터져 감당 못할 넉넉함맙소사팜므 파탈의 치명적인 신여성혜성처럼 나타나 온 마음 뺏은 여왕끊어내듯 후두둑 꽃잎을 떨구던 날아서라그리움 하나 던져놓고 간 여인온 마음 아리도록 기나긴 침묵 끝에약속처럼 다시 핀 검은 줄기 낙양화오로지한마음으로 별을 낳는 꽃 중의 꽃
인부들이 벗어 놓고 간손바닥이 빨간 장갑들 여러 켤레가고단한 손바닥들 같다하루의 일이 묻은 손을 저렇게벗어서 돌돌 말아 놓을 수 있다면손은 평생의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빈손을 씻고 또 씻은 손의 이율배반노동이 없는 손은 정말 행복한 손일까하는 생각이 드는 일이지만매일매일 일 끝에 아무리손을 씻어도 직업은 씻겨지지 않는다숙련이란 이름의 직업들물집으로 또는 자잘한 상처와흉터들로 손을 떠나지 못하는앙숙과 필요불가결의 관계가 오래 될수록서로 닮은 흔적들을 만들어내는천직이라는 직업들지친 위로도 없이 아무런 채비도 없이일이 떠난
늦은 밤 이불을 비집고 나온 아버지의 자서전을 읽는다힘겨운 문맹의 생애는 또렷한 글씨로 남길 수 없어한 획의 선이나 기호들로 새기고바다를 많이 뱉어낸 아픔들을 읽게 되면자식의 가슴이 찢어질까눈길 닿는 자리마다 놓아둔 몽돌눈에 고이는 바다의 찡한 갯내 코끝을 찔러파도치듯 들썩거리는 어깨주먹을 처박아 막아도자꾸만 갈매기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입내 자식이 태어나등이 휘어져 보고서야 해독하게 된풍랑을 휘갈겨 놓은누렇게 탈색된 앞장을 뒤집어 보니해준 거 없다 던진 가시들 까뭇까뭇 박힌 뒷장잠 속에서도 풍랑을 만났을까 뒤집히는 이불침몰하는
머리맡에 오래된 이름이 드나드는낡은 필름을 두고 잤다꿈은 바늘 끝처럼 날카롭다지나간 말을 부려놓은 곳에잠그지 못한 울음들이 엉켜 있다오래된 붓을 담그면 물방울들이 길을 연다그 아득한 풍경에 닿아있는 숨혼자 숨어 핀 꽃들의 자리에 바다의 심장이 있다물속에 핀 꽃들이 노랗게 울렁거린다어떤 봄은 용기를 내서 울어야 사용할 수 있다가라앉은 손들이 울컥 게워 놓은슬픔마저 빠져나간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들껴안았던 날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미안하다는 말이 돌아오는 봄기일에 만난 우리들 말 속으로 끼어드는두고 와서 미안해
맞저울은 무척 흥미로웠다. 양쪽에 무게를 다는 저울이었는데 한쪽에는 물건을, 반대쪽에는 물건 또는 원하는 무게의 추를 얹기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작고 앙증맞은 맞저울을 가지고 놀기 좋아했다. 아버지가 한약을 달 때 사용하던 저울이었는데 쓰시지 않을 때는 슬쩍 가져다가 문구용품이나 소지품들을 달았다. 양쪽에 무게가 같을 때 수평이 되지만 무게가 맞지 않을 때는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중심을 잡고 무게를 조절하여 같아질 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저울의 추처럼 무엇이든지 바른 생각으로 중심을 잡
닳은 뒷굽이 바닥을 친다. 딸그락딸그락 요란스럽다. 제때 밑창을 갈지 않아 길바닥이 구두 뒷굽을 갉아 먹는다. 닳고 닳은 신발은 고단하게 살아온 나의 분신이다.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었다. 집안에 가난이 말똥처럼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육성회비를 내지 않은 사람은 며칠까지 부모님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교실 청소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데 한 아이가 “너거 아부지 뭐 하셔?” 하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얼굴만 붉혔다.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마부라고 말할 수 없었다. 고약한 말똥 냄새가 난다고 쑤군거릴 것 같
형님은 나를 보고 꽃이라 했다. 찬 서리 서리한 내 모습이 어찌 꽃이 될 수 있으랴만, 꽃이라는데. 꽃같이 예쁘다는데, 황홀했다.병세가 한층 깊어 지면서부터이다. 설렁설렁 사람 다루는 일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형님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제 와서 내가 꽃이 되었을까.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형님의 활짝 핀 꽃이 되기로 했다.육중한 대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바람이 달음질쳐 안긴다. 호들갑스럽게 반색하지도 반기는 기색 없이 수연에미가 무심히 문을 열어 주었다.“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작은어머니 제가 그 돈을 얼마나 많이 찾았는데요.”“
일요일 아침, 작은 새 한 마리가 이슬을 머금은 수풀 위로 내려앉는다. 작은 새는 통통 모듬발을 뛰면서 주위를 살핀다. 콘크리트 담벼락 아래 의자에 앉은 나와 작은 새와의 거리는 5미터쯤이다. 작은 새는 나를 인지했음인지 무척 경계심을 드러내며 금방이라도 날아갈 태세다. 나는 숨을 죽이며 허수아비를 가장한다. 그러나 작은 새는 속지 않는다. 작은 새는 촉촉 새소리를 내더니 그만 포르르 날아오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금방 날아가버릴 것 같던 작은 새가 공중으로 떠올라 한 바퀴 회전을 한 후 활공을 하듯 내 쪽을 향해 날아오는 게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고개가 절로 돌려지는 집이 있었다.하늘이 그 마당으로 쏟아지고 가을날에는 단풍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다 보고 지나가게 되는 그런 집이었다. 그렇다고 오래된 그 집이 화려하거나 이쁜 건 절대 아니고. 만약 저 집을 매매하여 나의 집으로 만든다고 해도 대략 난감할 정도의 남루함과 쓰레기 더미로 공력을 치려야 될 상태.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댁으로 차 마시러 가는 길에 운전은 하고 있었지만 눈길은 그 쓰레기 더미 집으로 자연스레 고정되어 바라다보게 되었는데 뭔가가 퍼드덕 거리며
당신은 내가 읽는 책 중에 책입니다인내심을 시험받고사람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기에도아이러니와 비약이 뒤섞여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는까다로운 문장반면에 평이한 문체에서 읽히는복합 장치는 의외입니다느리게 어슬렁거리지만언제라도 잘 장전된 속도로 튀어 오를 수 있는고양이의 내숭 같은 거겠죠엿기름으로 삭힌 당질의 구절에선시간만이 독해가 가능한은은한 비밀의 맛을 발견합니다사랑이 누락된 부분에선조용히 옆에 서 있어 주고서로에게 곁을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공기와 바람, 햇살과 그림자 같은가벼운 사유 하나 끼워 넣고 싶었습니다밑줄 하나 긋기까지 고
앰뷸런스는 메롱메롱 하는 소리를 요란하게 울려대며 낯익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말희 씨의 꽃게탕 식당 간판이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앰뷸런스는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병원 도착까지 예상 시간은 20분. 나는 들것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곁에 말희 씨와 나란히 앉아 있다. 그를 지켜보아야 하지만, 나는 자꾸 눈길을 돌린다. 슬퍼해야 할 이 순간이 웬지 부담스러운 역할 수행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다. 이 역할로부터 재빨리 벗어나고 싶다. 두 몬스터를 힐긋 쏘아보곤 겁나게 액정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 몸이 차라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공기 중에는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핸드폰을 열었다. 10월 12일, 경북일보 운영위원장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후 2시였다.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잠시 멍 해졌다.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지난한 날들이 있었다는 것도 그때 서야 알았다.모든 게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낯선 사람, 낯선 사물, 낯선 건물들이 모두 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갔다. 예컨대 나를 뒤에 남겨두고 가는 듯 느꼈던 것이다.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자책하며 나는 미련 없이 문학동네를
나는 칼을 좋아한다.보육원을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생존을 위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낮에 돈을 벌고 밤에 야간대학에 다녔다. 좌우를 살필 여유 따위는 아예 없었다. 생존하기 위해 쫓기듯 앞만 보고 달려야만 했다. 세상은 나를 쉴 새 없이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다그쳤다.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다는 것이 두렵고 서러웠다. 냉대와 무시가 서러움과 억울함이 되어 쌓이면서 나는 칼의 서늘한 단호함을 좋아하게 되었다.나는 칼을 하나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칼이었다. 내 처지엔
바쁘게 살아왔고, 소설 쓰기를 시작하면서도 늘 쫓기듯 글을 썼다. 그러면서도 소설에 대한 갈증은 더 깊어가기만 한다. 이제부터 나의 글쓰기는 나름의 한계를 인정하고 글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컴퓨터 앞에 앉아 자간을 채울 때 너무나 행복하다. 앞으로 얼마를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망설이지 않고 앞만 보고 나갈 생각이다. 이 가을 나는 소설 곳간을 넉넉히 채울 생각만으로도 황홀해하고 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경북일보 그리고 청송 객주 문학관에 감사를 드린다.
옻칠을 하는 것은 미美를 살리는 손길이다. 단순히 여성의 겉모습을 돋보이게 하는 분칠과는 달리 숨어 있는 색을 우러나게 하는 것이다. 배우가 맡은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단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낯선 인물이 된 배우도 자신을 안에 품었기에 뿜어내는 품격의 결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시대의 흐름에 밀려난 가구에게 먹이는 칠은 보존이며 물건이 담은 가치를 지켜주기 위함이다. 요즘은 옛 목공품이 장인의 정성이 가득한 터치로 예술품이 되는 매력에 빠져 어디를 가든 공방을 기웃거린다. 우연히 옻칠로 멋과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품을 만날 기회가
은행잎의 색이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마른풀 냄새가 납니다.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을 조금 늦게 오라 다시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가을볕을 뒤에 달고 산책을 나온 참입니다. 몽글몽글 말랑한 것이 가슴을 훅, 치고 들어왔습니다. 만나는 꽃들이 더욱 예뻐서 좀 오래 눈을 맞추어 봅니다. 저들은 절정을 지나 조용한 마무리를 위한 준비 기간이겠지요. 깜냥껏 자태를 뽐냈으니 후회도 없겠지요.사는 것은 소소한 것을 쌓아서 삶을 만드는 일입니다. 차근차근 돌아보는 날들에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바쁜 척하느라 놓쳐버린 시간에는
여자를 처음 본 곳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첫눈이 늦다고 언론이 꽤나 호들갑을 떨었던 작년 12월 말이었다. 지금 내 기억에는 장소와 시간, 여자가 마땅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사라지거나 그도 아니면 최소한 희미해야만 했다. 그 마땅함과 의도는 내가 아니라 여자가 만든 것이니까. 그러나 나는 너무도 많은 걸, 심지어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이제 기억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그러고 있다는 게 내가 대상이 없는 상실감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내가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는 근거이기도 했다.알람이 울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