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가 소설이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국민학교 라 불러야 맞습니다. 방학이 끝나 갈 무렵, 밀린 일기는 저의 첫 창작 노트였습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를 한 권의 일기장에 매일 똑같이 써야 한다는 것은 오늘의 날씨를 쓰는 것보다 더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지어 써보기로 했습니다. 진솔하게 써야 한다는 일기의 목적과 상관없이 없던 사건을 만들어 글을 썼습니다. 제 창작의 시작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선생님은 빨간 볼펜으로 일일이 답을 달아주셨습니다. ‘나는 네가 소설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먼 곳 떠돌던 찬 바람 돌아와시장에서 좌판 걷던순이 엄마 어깨뼈 속 파고들었다붉은 몸살 노을로 짙어져 맨살에 보챈다배추통 하나 더 팔기 위해‘김치 담그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고 떠든광고성 말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과장 된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한뎃잠 자던 때도 있어손 모아 감사한다빛이 얇아지는 겨울태양이 잠들어도 깨어 있어야 하고땅이 젖어 슬픈 날도좌판을 깔아야 한다는 일념에 평생을 건 삶은홀로 선 골목길에 그림자만 길었던 날푸성귀에 대한 고마움으로키운 아들의 박사모붉은 노을로 퍼지는 몸살아픈 어깨도 내일이면거뜬할
당신을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우리의 관계는 적막해진다가령, 어질러진 방의 내부를 보면서당신이 먹다 남긴 음료수 캔 하나에 참을 수 없이 날뛰는 말의 통증을 느낄 때,당신은 화를 내며 반격을 시도한다문제의 단초를 둘러싸고당신의 이력을 조목조목 나열하지만그런 친절에 동의하는 당신은 거의 없다그러니까이미 일은 벌어졌고우리의 내전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이런 대대적인 공격에 무너지는 것은 사실은당신이 아니라 내가 배열한 말들의 목록,그 형식의 진부함에 더 화가 나는 것이다이럴 때 필요한 것은범인을 추적하는 프로파일러의 노련한
깊어가는 가을 겨울에 닿고맑은 바람 부는 10월입니다. 꽃빛 보다 환한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상을 받다니 꿈만 같습니다. 시와 만남이 오래되어 더욱 기뻤습니다. 좀 더 공감받고 감동 주는 시 쓰기를 하라 시듯.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시의 세계와 만나 상상력과 오감을 접목하여 새로운 세계를 보는 건 즐거웠고. 상상으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무딘 감각으로 감동을 주고 공감받을 수 있는 작품 쓰는 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시의 세계는 무한이라
말에 대해 말하자면말에 대해 말하자면 할 말이 많아진다.현대는 말의 홍수 시대다. 말을 듣고 싶은 사람 보다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시끄러운 세상이다. 누구나 제 말을 하고 싶어 한다. 들으려고 하지 않고 속에 있는 것을 내뱉으면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유튜버들이 늘어나는 것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누구의 간섭 없이 실컷 하면서 짭짤한 수입까지 챙기는데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겠는가말은 할수록 는다.어눌하던 말솜씨가 다듬어지면
막사발이 무수한 알을 품었다. 둥글게 살아온 생도 궁핍한 뒷골목의 삶도 따스하게 껴안는다. 뜨거움을 삼켜 향기로 스미면 투명 알이 꿈틀거린다. 껍데기는 말랑해지고 복아는 부푼다. 크고 작은 알, 뭉그러지고 당실하고 길쭉한 알들이 부화해 제자리를 찾는다. 흙빛 양수 속에서 볕내가 난다.막사발 안과 밖에 실금이 가 있다. 빙렬氷裂이다. 흙이 가마 안에서 화마의 시련을 이겨내고 얻은 표식이고 유약이 화신에게 하사받은 문신이다. 모두 불이 잉태하고 낳은 생의 지도다. 사발에 작은 물고기 알 모양으로 금이 갔으니 어자문魚子紋이라 칭한다.반달
낙동강수계관리위원회는 내년 상수원 관리지역 및 댐 주변 지역의 특별지원사업에 대구 군위, 경북 경주·청송·김천을 비롯해 경남 진주·사천·밀양·산청을 선정했다고 밝혔다.특별지원사업은 오염물질정화효과가 높은 친환경 사업과 지역민 소득증대사업, 지역주민 생활환경개선사업 등 대규모 우수사업을 지자체 공모를 통해 발굴·지원하는 사업이다.청송군 탄소중립을 위한 산소버스 보급사업 등 7개 사업이 신규 선정되고 계속 사업으로 경주시 낙동강환경아카데미 조성사업 등 3개 사업이 선정됐다.청송군은 ‘청송군 탄소중립을 위한 산소버스 보급 사업’으로 선정
‘청송사과축제’가 11월 1일부터 5일까지 청송읍 용전천(현비암 앞)에서 열린다. 제17회를 맞은 올해 청송사과축제는 ‘청송사과, 찬란한 금빛 향연’이란 주제로 청송사과의 계절을 맞아 풍성하게 꾸며진다. 군은 이번 축제를 통해 ‘산소카페 청송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국제슬로시티’, ‘산소카페 청송정원’ 등 최고의 청정 관광도시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용전천 현비암 주변 자연경관에 빛을 수놓은 야간 경관조성사업을 축제와 연계해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축제장을 만들었음을 강조했다. 청송사과축제 대표 프로그램 중
몇 해 전 최영욱 작가의 ‘카르마’를 만났습니다. 달 항아리에 새겨진 빙렬氷裂이 신비로운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작가는 빙렬을 가리켜 ‘그것은 인생길이다. 갈라지면서 이어지듯 만났다 헤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로 어우러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오늘도 각각 다른 유형의 어자문魚子紋으로 ‘카르마’를 짓기도 하고 갚기도 하는 삶인 것 같습니다.도자기 작업은 인생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먼저 좋은 흙을 골라야 하고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며 뜨거운 불의 시련을 견뎌내야 비로소 세상 앞
청송군의회(의장 권태준)는 지난 27일 청송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의정을 체험하는 자리를 가졌다. 올해 상반기부터 운영하고 있는 청송군의회의 모의의정 체험은 학생들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울 수 있도록 의회의 의사 결정 전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는 학생 참여 프로그램이다. 모의의회는 사전에 약속된 시나리오에 따라 안건에 대한 제안설명, 질의답변, 찬반토론, 표결 순으로 진행됐다. 권태준 의장은 “모의의정 체험을 통해 의회의 기능과 역할을 배우며 의회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학
4호선 환승역에서 내린 봄이 두 눈을 번갈아 비볐다. 눈곱이나 티끌이라도 들어간 듯 눈이 따끔거렸다. 속눈썹 몇 개를 뽑아내도 이물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봄은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울지 않았는데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봄이 다시 눈을 깜빡였다. 플랫폼 기둥을 감싼 지하철 노선도가 환해지고 글자들이 또렷이 보였다. 시력이 한결 좋아진 느낌이었다.마포역 3번 출구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봄은 뿌연 하늘에 낮달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맑은 날에도 잘 볼 수 없는 달을 미세먼지 나쁨 수준인 날에 보다니. 언젠가 엄마
윤경희 청송군수는 다음 달 1일부터 5일간 청송읍 용전천 일원에서 펼쳐지는 ‘제17회 청송사과축제’를 앞두고, 30일 아침 축제준비상황을 점검하고 현장에서 확대 간부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 앞서 방문객 편의시설 및 체험시설, 주차장, 안전관리상태 등 축제준비 전반에 대해 현장을 직접 점검한 윤경희 군수는 간부회의 석상에서 “사과축제는 청송에서 치러지는 모든 행사 중 가장 크고 중요한 만큼 모든 공직자들이 역량을 집중해 주기 바란다” 며 “특히 바가지요금 근절과 함께 단 1건의 안전사고도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점검할 것”을
이른 아침, 해안은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눈부신 아침 해를 맞으며 산책 겸 운동 겸 모래사장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해안선을 따라 밤새 바닷가에서 밀려 나온 수초와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길 아래로 은행이 떨어져 거뭇거뭇 지저분한 거리를 지나게 됩니다. 악취는 코를 막게 하고 사람들은 그 길을 피해 갑니다.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보도가 깨끗해졌습니다. 누군가 청소를 한 것이지요.보이든 보이지 않든 이 세계는 누군가의 수고로 깨끗해지고 정화되는 것 같습니다.
“김주영 작가의 소설 ‘천둥소리’를 읽고 나서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27일 열린 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 문학대전 시상식에서 단편소설 부문 공동대상을 수상한 김외숙 작가와 경북 청송 출신 문학계의 거장 김주영 작가의 글로 맺은 인연이 이어져 화제를 모았다.경북 청도 출신으로 1991년 계간 ‘문학과 의식’을 통해 등단한 김 작가는 캐나다에서 태평양을 건너 고향인 경북을 방문해 시상식 자리를 빛냈다.단편소설 ‘그 아침의 농담’으로 공동대상을 수상한 김외숙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문장
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시상식 및 학술포럼과 팸투어가 지난 27·28일 이틀간 청송군 진보면 객주문학관에서 열렸다.이날 오후 2시부터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시상식, 시낭송, 김주영 작가 특강에 이어 오후 5시부터는 다양한 예술공연과 더불어 축하만찬이 이어졌다.이승택 청송부군수, 김태현 청송경찰서장, 권태준 청송군의회 의장, 황진수 부의장, 정미진·심상휴·윤영경·조찬걸·박신영 군의원, 황대규 청송영양축협장 등이 내빈으로 참석했다.김주영 작가는 수상자를 대상으로 문학 창작에 관한 학술적 주제를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냈다.시상
김주영 작가는 27일 ‘청송객주문학대전 시상식 및 학술포럼’ 특강에 앞서 10년간 청송객주문학대전을 이끌어 온 경북일보사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김 작가는 중국 시안의 거울가게 얘기를 꺼내면서 당태종과 신하 위징의 일화를 소개했다.위징은 원래 태종 이세민의 형, 즉 당나라의 초대 황제인 고조 이연의 장남이자 황태자였던 이건성의 책사였다.그런데 이건성은 맹한 구석이 있어서 황제가 되기엔 도저히 미덥지 않았다. 반면에 아우인 이세민은 야망도 능력도 형보다 한수 위였다.위징은 매일같이 황태자에게 “더 늦기 전에 아우를 죽이십시오.
공사장 인부들이 자장면을 시켰다배달 오토바이가 모퉁이를 돌아나가자나무젓가락 같은 하루가오전과 오후로 딱, 쪼개졌다서둘러 자장면이 비벼질 때단무지는 마치 반달에 잇자국이 난 듯하다노랑이 검은 한 끼의 간을 맞춘다미어지게 말아 넣은 볼 속이꿀꺽 삼켜지는 순간,목울대가 곱빼기로 흔들린다이때만큼은 허기진 온몸의 힘줄들도찰진 가닥으로 불거진다식사를 끝낸 인부들은 졸음과 하품에적당히 섞여 스티로폼 위에 놓여진다망치도 사다리도 줄자의 눈금들도 잠에 빠진다코고는 소리가 커다란 도마에면을 찰각찰각 쳐대듯데시벨을 높인다 팔십cc 엔진소리덩달아 수거되
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시 부문에 응모된 작품 1842편, 본심에 오른 응모자만 60명, 300여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범박한 의미에서 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현대성을 빙자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생활을 벗어나 관념에 기울어진 작품, 개인적 삶의 넋두리를 풀어놓은 작품들은 바람직한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합의를 했다.60명의 작품 중 입상권에 드는 작품이 18편인데 이를 뽑기 위해 여러 번 읽어야 했고, 심사위원들의 토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매끄러운 방심(放心)의 한때가 있을까요?아무리 손에 힘을 주어도 빠져나가는 놓치는 한순간,이렇게 향기롭고 무기력한 손아귀는 세상에 또 없을 거예요.시(詩)를 생각하고 또 각오할 때마다비누 같은 것이라 믿고 또 믿을 것이라고 다짐했어요.무작정 쥐려 할수록무기력하게 빠져나가는 일을집착하고 있었지만버블버블 비눗방울 놀이처럼이파리는 햇빛을 칠하고그럴 때마다 파란 하늘엔 비누 거품이 둥둥 떠 있네요.끝을 동그랗게 모아들이는 빗방울 같은 시인이 되겠다던기도가 되지 못한 말은 참 가벼웠지요.내 바람의 질량은 몇 그램일까요.걱정과 책임감으
켜켜로 길게 누운 블라인드 날개 하나부터 젖히는 것은 창가 탁자에 앉을 때마다 하는 나의 습관이다. 길을 사이에 두고 네 가구씩 서로 마주 보도록 지은 첫 집에 사는 나는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고도 이웃들을 볼 수 있다.대부분 퇴직한 노년의 주민들은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 건너 두 번째 집의 이웃은 아침마다 연보랏빛 가운 차림으로 드라이브 웨이에서 신문을 집어 들고는 그가 누구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말을 걸었다. 이웃이 개를 데리고 있으면 그 개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는데 대개 개 주인은 자신이 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