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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五曲山高雲氣深 (오곡산고운기심·오곡은 산은 높고 구름 짙은데)
長時煙雨暗平林 (장시연우암평림·사철 안개비로 평림이 늘 어둡다)
林間有客無人識 (임간유객무인식·숲 속의 나그네를 그 누가 알랴만)
欸乃聲中萬古心 (예내성중만고심·노젓는 소리에 떠오르는 한없는 마음이여)


이 시는 주희가 거의 평생을 보낸 복건성의 무이산을 그리고 있다. 무이산 구곡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제1곡부터 제9곡까지의 경치와 감회를 읊은 것 중에서 이 시는 다섯 번째 계곡이 굽이치는 은병봉 아래평림 나루터 근처에 초막을 짓고 무이정사라 이름한 그곳의 모습과 감회를 노래한 것이다.

산은 높고 구름은 짙은데 늘 안개비가 내려 어둡다. 그곳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인생의 나그네를 누가 제대로 알아볼 수 있으리오. 계곡의 노 젓는 소리에 참으로 아득한 세월에 걸쳐 갈고 닦은 마음이 절절하다. 산수를 읊은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수를 빌려 학문의 심오함과 그 연찬의 멀고 먼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주희는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자는 원회(元晦), 호는 회암(晦庵)이다. 14세에 부친이 타계하자 유백수(劉白水)등을 사사하면서 불교와 노자의 학문에 관심을 가졌으나 24세에 이동(李?)을 사숙하면서 거의 천여 년 동안 불교와 도교에 가려 사상의 주도적 지위를 상실한 유학의 학문적, 사상적 위상을 회복하려는 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고, 여동래(呂東萊) 등과 교유하면서 유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른바 ‘송조오현(宋朝五賢)’이라는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소옹 등의 학문적 연구를 심화시키고 집대성하여 ‘논어’‘대학’ ‘중용’ ‘맹자’ 등 사서를 새로 쓰고(‘사서집주(四書集注)’), ‘주역’ 등 오경을 다듬었으며, 주자학의교과서라는 ‘근사록(近思錄)’을 짓기도 했다.

19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71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지만 현직은 고작 9년 정도였고 대부분 명목상의 관직이어서 학문에 전념할 수가 있었고, 천성이 학리의 천착과 연구에 맞았다. 만년에는 고위직에도 오를 기회가 있었으나 직언과 소신을 피력하면서 기존의 정치판과 타협하지 않아 오히려 쫓겨났고, 정적인 한탁주에 의해 그의 학문이 부정되고 저서의 간행과 유포가 일시 금지되기까지 했다.

주희의 성리학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사서에 대한 주석은 중국에서는 원나라 때부터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그 외 나라에서도 국가 과거시험의 표준적인 지침이 되었다.

특히 그의 학문과 사상은 조선 500년을 거의 절대적으로 지배하여 조선 사회의 사상과 문화, 그리고 생활의 이념이 되었다. 송시열은 “세상의 모든 이치는 주자가 이미 완벽하게 밝혀 놓았다. 그러므로 주자의 말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주장을 하거나 주자와 다른 경전의 주석을 다는 자는 사문난적일 뿐이다”라는 주장까지 하였으니, 이런 독선적 태도는 조선 사회가 파벌이 형성되고 형식과 명분, 그리고 체면 등이 보태짐으로써 이념이 되고 도그마가 되어 조선 중기 이후 사상과 학문의 자유로운 형성을 크게 저해했음은 물론 사화와 당쟁의 원인이 되었고, 사회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자(子)’란 본래 중국에서 노인에 대한 경칭 또는 스승에 대한 존칭 등으로 사용되었으나 주자학이 성립되면서 ‘자’란 ‘만세유통(萬歲流通)할 자’로 사상이나 학문이 만 년은 갈 수 있는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라고 하면서 주희를 포함한 송조육현에게 모두 ‘자’를 붙여 부르기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정조가 송시열의 문집을 편찬하면서 ‘송자대전(宋子大全)’이라고 제목을 달아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자’의 칭호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송시열은 사사(賜死)되었음에도 문묘에 배향되고, ‘문정(文正)’을 시호로 받았으며, ‘송자(宋子)’로 존칭되었으니 참으로 특이한 경우이다. 사사도, 문묘 배향도, 시호도, 송자 존칭도 다 나랏일이었는데 나랏일을 이렇게도 할 수 있으니 변통이 많아서인가.

조선 최고의 유학자라는 이황의 ‘차무이도가’, 이이의 ‘고산구곡가’,그리고 송시열의 ‘화양구곡가’ 등이 모두 이것을 따르고 본받은 것이니, 바람이 있다면 그 글들이 주희의 글에 비해 격이 더 높고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를,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중국의 대가들로부터 그렇게 평가받기를 희망해 본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
서선미 기자 meeyan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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