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길목에 자리 사시사철 하얀 물보라 뿌리는 달기 폭포 장관

청송 고향인물.jpg
△청송군 청송읍

청송읍(靑松邑)은 솔내음 가득한 푸른 산과 그 사이 용전천(龍纏川) 맑은 강가에 군청이 소재한 작은 산골 고장이다. 둘러보는 산마다 지나보는 들마다 고향 같은 정취와 훈훈한 인정을 쉽게 느껴 볼 수 있는 고장이다.

소금강이라 불리는 국립공원 주왕산(周王山)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다시 찾고 싶은 많은 명소를 가지고 있다. 어느 강에서든 맑은 물 속으로 헤엄치는 버들치며 송사리를 볼 수가 있으며, 그 중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하얀 물보라를 뿌리며 쏟아 내리는 달기 폭포와, 조선조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 沈氏)를 기리기 위해 이름 지었다는 용전천변의 현비암(賢妃岩)의 폭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하다 못해 신비함과 경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하얀색 작은 물방울을 일으키며 바위 사이로 샘솟는 달기 약수! 가난했던 옛 우리네 어른들은 그 물을 많이 먹으려고 일부러 맵고 짠 장떡을 잔뜩 먹은 다음 약수탕을 찾았다고 한다. 삼복 여름이면 농사일에 지친 몸을 추스리기 위해 먹었다는 약수로 만들어낸 달기 백숙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청송의 자랑거리이다. 또한 전국 어느 온천수보다 게르마늄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는 청송 온천은 앞으로 청송의 이름을 전국에 크게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보광사극락전
△보광사극락전(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840호)

보광사는 7세기경 신라시대의 명승(名僧)인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조선 세종(世宗)의 비(妃)인 청송심씨(淸松沈氏)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의 시조묘를 모시는 사찰이었다. 극락전(極樂殿)은 동왕(同王)11년(1429)에 만세루 등과 함께 처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중기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보수공사 중 만력(萬曆) 43년 12월 1일자의 상량문이 나왔으므로 1615년 건축으로 여겨진다. 정면3칸, 측면3칸의 구조로, 내부는 키가 큰 긴 기둥을 세우고 천장은 ‘井’자 모양으로 꾸몄다. 전체적으로 건물의 규모는 작으나 조선중기 건축양식의 표준을 따르고 있다.

△청운동성천댁 (靑雲洞 星川宅)-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172호

이 건물의 뒤편에는 낮은 야산이 있고 동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용전천을 바라보며 동향으로 배치돼 있지만, 대문은 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평면구성은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쇄형의 ‘ㅁ’자형이다. 2칸의 대청 좌우에 사랑방 2칸과 안방,윗방이 배치돼 있고 대청 앞 채에는 부엌, 고방, 외양간이 배치돼 ‘ㅁ’자형의 가옥으로는 작은 규모이며 앞마당은 매우 좁다. 이 안마당을 지붕으로 덮어 버렸다고 가정하면 현재의 평면구성은 까치구멍집의 평면과 흡사해 진다.

이 건물은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집 남쪽으로는 초가 3칸의 대문간채가 있다.
찬경루
△찬경루(도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 제183호)

세종 10년(1428년)에 군수 하담이 건립했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소헌왕후의 8왕자 가 어머니를 위해 각 2칸씩 건축했다고 하며 화재로 인해 1688년에 중수했다. 정면4칸, 측면4칸의 2층누각으로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83호이다. 맞은편 보광산에 있는 심홍부(청송심씨 시조) 묘소의 재각이며 장마철 용전천의 범람으로 묘소로 갈 수 없을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찬경루란 누각명은 군수 하담의 청을 받은 관찰사 홍여방이 순시때 지은 것으로 누각에 올라 심씨 시조묘를 보니 소헌왕후를 배출한 경사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운봉관
△운봉관(도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 제252호)

이 건물은 조선 세종(世宗)10년(1428) 군수 하담(河擔)이 찬경루(讚慶樓)와 함께 건축한 청송군의 객사(客舍)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중수기문에 의하면 선조때(1600년경) 한차례 중건한 바 있으며 숙종(肅宗) 43년(1717)부사 성환(成煥)이 다시 중수했고 순조(純祖) 12년(1812) 부사 강휘옥(姜彙鈺) 및 고종(高宗) 8년(1871) 부사 윤현기(尹顯技)가 각각 중수했다. 이 건물은 찬경루 뒤쪽에 서남향으로 배치돼 있다. 이 객사는 원래 중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양익사가 배치돼 있는 건물이었으나 한일합방 후 1918년경 중당과 서익사가 없어지고 현재 동익사에 현판을 달아 보존하고 있다. 현 객사는 정면6칸 측면3칸의 집으로 건축시기는 양식으로 보아 조선중기까지도 올려 볼수 있으나 일부분은 조선후기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만세루
△만세루(도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 제72호)

이 건물은 조선 세종(世宗)이 군수 하담(河澹)에게 명해 청송심씨(靑松沈氏) 시조인 심홍부(沈洪浮)의 묘 아래 건립한 재각이다. 보광산에 위치해 있는 심흥부의 묘소에 제사 지낼 때 비가 오면 이 누각을 사용했다고 한다. 건립연대는 따로 전해오는 기록은 없으나 월막리에 있는 찬경루(讚慶樓)와 같이 지었다고 한다. 보광사 사찰 경내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는 극락전(極樂殿)과 마주한다. 정면5칸 측면2칸으로 각각 사방으로 개방됐으며, 조선말기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청송향교(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제593호)

이 건물은 세종 8년(1426) 당시 청송지군사(靑松知郡事)로 재임 중이던 정지아(鄭之雅)가 굴동(屈洞)에 창건했다.

그 후 수차의 국난으로 소실돼 선조 39년(1606)에 부임한 이영도(李詠道)가 재임 5년간 국동(菊洞)에 대성전(大聖殿)을 중창(重創)했으며, 인조 7년(1629) 부사 이구징(李久澄)이 재임 3년간 동ㆍ서무(東ㆍ西無)·강당(講堂)·주사(廚舍)를 보축·중수했다가 숙종 19년(1693)에 부임한 부사 이문징(李文徵)이 교궁(校宮)의 지세가 맞지 않는다 해 재임 4년간에 현 위치인 방광산하(放光山下) 월막동(月幕洞)으로 대성전 및 부수 건물을 이건했다.

건물의 구성은 배향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앞쪽 좌·우로 동·서무(東·西無)가 있고, 우측으로 교육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좌우로 동·서재(東西齋)가 있으며, 입구에 청아루(菁莪樓)가 각각 배치돼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정위로 해, 그의 학통을 계승한 중국 5성과 송조 2현 및 동국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상정일(上丁日)에 지역 유림 들이 모여 이곳에서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올리고 있다.
드론으로촬영한 청송읍전경 사진제공=심명환

△청송읍 출신 인물

청송읍 출신 인물로는 국회의원을 지낸 윤용구 제3,4대 국회의원(청송) 자유당,박주운 제5대 국회의원(양주)민주당, 황병우 제10,12,13대 국회의원(청송ㆍ영덕ㆍ울진) 신민당, 신한민주당, 민주정의당. 3선의원, 윤태균 제14대국회의원(민주자유당), 김복동 14,15대 국회의원(대구동구갑)이 있다

또 김옥숙 여사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영부인, 한동수 3선 청송군수, 우병윤 경상북도 경제부지사, 윤주학 국방과학연구소(상임감사), 조영호 제54대 부산지방조달청장, 정휘진 대구 최초이자 전국 7번째 ‘패밀리 아너소사이어티’가입, 이상룡 시조시인이자 명예문학박사,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이정행 선생은 청송초등학교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줬고, 윤영균 한국산림복지진흥원 초대 원장 등 그밖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청송읍 출신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원용길 기자
원용길 기자 wyg@kyongbuk.com

청송·의성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