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잠시 쉼표···활력·감성 충전

▲ 흐린날의 영일대
오늘도 비가 내린다. 우리나라 날씨도 우기로 접어드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포스코 역사 박물관 앞에 선다. 포항 하면 포스코를 먼저 떠올리는 만큼 전시관을 놓칠 수 없다. 전시관 내 양옆 벽면에는 국내 최초로 고로 방식으로 ‘쇳물’을 생산한 과정과 철강 역사의 변화를 연도 별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곳부터 관람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면 가난의 굴레를 벗고 잘 사는 나라를 이루겠다는 꿈을 가진 ‘제철보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금껏 해변을 걸어온 것과 달리 이번 코스는 포항 시내를 도로변 따라 줄곧 걸으면 된다. 해파랑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도 갈림길이 없으니 헤맬 일은 거의 없다. 혹시라도 불안하면 전봇대를 유심히 살펴보자. 그곳에 해파랑 표지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오른쪽으로 바다 위의 섬 같은 포스코가 배경처럼 따라붙는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철강 도시답게 위엄 있고 방대한 규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즈음 형상강 하구 입구에 있는 운하관에 도착했다.

60년 대 말 포항제철이 들어서자 더불어 인구도 기하급수로 불어났다. 포항시는 형산강과 송도 동빈내항을 연결하던 물길을 매립하였다. 물길이 막힌 대신 그 위에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했다. 샛강은 혈관이 막힌 동맥처럼 순환을 멈추었다. 정지되었던 40여 년. 운하가 생기면서 물길이 열리자 고여 있던 시간이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영일대
영일대 하트 속으로~
운하를 따라 포항과 동빈항의 어제와 오늘을 반추하고 새파란 청춘처럼 찬란했던 송도바다를 잠시 추억해 본다. 모래사장을 맨발로 뛰어다니던 그 한 때는 어디로 갔을까. 바다가 탁 트인 풍경과 부드러운 모래알까지 삼킨 걸까. 해변은 자신을 다 내어주고 절벽 같은 빈 가슴으로 하얀 포말을 추억처럼 뱉어낸다. 그 자리에 머물렀던 시간과 사람은 사라졌지만 오늘도 자유의 여신상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높이 올린 채 송도를 굽어보고 있다. 비를 맞고 섰음에도 그 모습은 고고하고 숭고하고 아름답다.

빗줄기가 우산 속으로 들이친다. 날씨가 궂건 맑든 봄이건 겨울이건 상관없이 포스코 제선부 고로의 연기는 멈추지 않고 피어난다. 꽃봉오리처럼 햇살처럼 땀방울로 피어나 가난했던 사람들 삶에 풍요로운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그 땀이 고로의 쇳물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게 만들었다. 1973년 6월 9일. 첫 쇳물이 생산되던 순간, 감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던 사람들의 사진을 포스코 역사 박물관에서 보았기에 감정 이입된 마음이 쉽게 식지 않는다.
활기찬 죽도 시장
죽도시장
곧이어 들른 죽도 시장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좌판에 갈치와 고등어를 놓고 파는 할머니는 생선 배를 가르는 게 행복하시단다. “여기가 아니면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돈 푼이라도 만져 보겠노.” 평생 일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라 노동을 즐기신다.

모든 길 위에는 죽을힘을 다해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 힘이 난다. 길이 위대한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아주 옛날, 송도와 죽도, 해도는 모두 섬이었다. 죽도는 60년 대 후반까지도 갈대가 우거져 갈대섬이라 불렸다. 일본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대부부의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어떡하든 버텨내야 했기에 갈대 무성한 내항의 습지대에 노전을 폈다.

역사는 역사 위에 새롭게 쓰이는 것일까. 포스코의 발전과 함께 죽도시장은 번창했고 지금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공동 어시장이 되었다. 점포 수만 12,000여 개에 달한다는데 수족관에는 대게와 문어, 돔과 광어로 가득 찼다. 싱싱한 활어가 유영하는 모습에 잠시 묶였던 마음은 우럭과 광어를 떠서 한 접시 먹은 뒤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식당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은 상인은 손님과 흥정하랴, 회 뜨랴, 정신이 없다. 사는 일이 재미없고 심드렁하면 시장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치열한 삶의 터전을 보고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초계함의 위엄
초계함 선수 갑판에서
죽도 시장을 빠져나와 동빈큰다리를 건넌다. 건너편에 퇴역한 포항함이 있어 인사라도 하고 갈 생각이다. 몇 년 전 서해에서 피격당해 침몰한 천안함의 원형 모델인 포항함은 30년 가까이 조국 영해 수호 임무를 수행한 뒤 2009년에 퇴역했다. 임무를 완수하고 휴식 중인 포항함의 위용이 여전하다. 그 앞에서 ‘필승!’이라 외친 뒤 안으로 들어갔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부근 해상에서 피격되어 침몰한 초계함과 그때 사망하거나 실종된 46명의 해군 장병들 사진이 내부 벽에 붙어 있다. 실종된 장병을 구조하기 위해 심해 깊은 곳에서 작업하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도 함께다. 매년 3월 26일이면 46인의 용사를 기리는 추념식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갓 스물을 넘긴 장병들 얼굴이 맑아서 슬프다.

다시 길 위에 서면 오른쪽으로 여객선 터미널이 보인다. 울릉도와 독도를 가려면 이곳에서 배를 타면 된다. 너울이 조금 있지만 선플라워호는 울릉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곧이어 도착한 곳은 영일대해수욕장이다. 이제 비는 조심성 많은 아이처럼 소심하게 내린다. 사실 이런 날이 싫은 건 아니다. 사진만 제대로 찍을 수 있다면 나름의 운치도 있고 때로 센티멘털한 기분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해상누각이다. 지평선을 향해 뻗어나갈 듯 바다위에 세워진 누각이 환상적이다. 누각 앞 장미공원도 매력만점이다. 40여 종의 장미와 사랑에 빠져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환호공원 입구
환호공원 내 시립 미술관 야외조각
두호동 해안도로는 사색하며 걷기 좋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환호공원 못 미쳐서 화석산지를 볼 수 있다. 무심히 걸어가면 지나치기 쉬운 만큼 관심이 있다면 신경 써 볼 일이다. 이곳에서는 1300만 년 전에 살았던 생물들의 화석이 발견되는데 나뭇잎 화석부터 게 화석, 물고기 화석 등 종류가 다양하다. 아주 옛날 바다였을 이곳을 상상하며 걷다 보니 눈앞이 환호공원이다.

나뭇잎이 푸른 물을 뚝뚝 떨구고 선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고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시립미술관이다. 여행길에 정신 환기도 할 겸 미술 관람을 할까 했는데 이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이다. 아쉬움에 야외 잔디밭에 전시된 조각품을 둘러본다. 익살스러운 돈키호테 모습을 감상하다 다시 해안 도로로 내려선다.
환호마을 돌비석
환호마을 앞바다에서 행복을 줍는 사람들
환호 마을 돌비석이 보이고 바로 앞 전봇대에 해파랑 표시가 되어 있다. 도로를 건너기 전 파도에 떠밀려온 해초를 건지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시 바다를 감상한다. 한 움큼의 행복을 건진 이들의 표정에 에너지가 넘친다. 행복은 엄청나게 거창한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며 남은 길을 마저 걷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포항대까지는 도심을 끼고 걷는 코스라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걸으면 된다.
▲ 임수진 소설가




□여행자 정보

△[포항크루즈 체험]

·운항시간 : 성수기(5월~10월) 10:00 ~ 18:00 /비수기(11월~4월) 10:00 ~ 17:00
※ 매월 넷째 주 월요일은 안전점검의 날로 운항 중단

·요금 *A, B 코스 - 대인 10,000원 / 소인 8,000원 (동해안 5개 시군민 8,000원 / 6,000원)
*야간코스 - 대인 15,000원 / 소인 12,000원 (동해안 5개 시군민 12,000원 / 10,000원)

※ 야간코스는 하절기(7,8,9월) 운항하며, 단체예약에 한함·문의 : 054-270-5177

△ [포스코 역사 박물관]

-관람 시간 : 평일 09~18:00
-관람료 :무료
-주소 :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6261
-문의 : 054-220-7720

△[포항함 체험관]

-체험 시간 : 09~18:00
(동, 하절기에 따라 한 시간씩 빨라지거나 늦어짐)

-관람료 : 무료
-문의 : 054-231-3882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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