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배리 삼존불.
경주 시내에서 포석정을 지나 삼릉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삼불사’란 안내판이 보인다. 이 절로 오르는 계단 길옆에 ‘세심단속문(洗心斷俗門 )’이라 음각된 비석이 서 있다. 세속의 인연을 끊고 마음을 씻은 후, 불가(佛家)로 들어가는 문이란 뜻이다. 저만치 누각 안에 세 불상이 서 있다. 배리(배동)마을에 있는 불상이라 하여 ‘배리 삼존불’로 부른다. 보물 제63호이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불상은 원래 근처 남산으로 오르는 선방골 계곡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이곳에 모아 세운 것이다. 햇빛의 방향 따라 상호의 미소가 달라진다는 신비스런 불상인데 누각 안에 있어 그런지 다소 칙칙한 모습이다. 본존불인 아미타여래가 양쪽에 두 협시보살을 거느리고 서 있다.

약 2.8m 높이로 둥근 얼굴에 몸이 풍만하다. 두툼한 입술과 통통한 양 뺨에 어린아이의 미소가 섞인 듯 천진하게 보인다.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으로 ‘두려워 하지 마라, 모든 악은 내가 막아주마’라는 듯, 손뼉을 들어 앞을 막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무엇이든지 다 들어준다’는 듯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다.

우측 협시보살은 보름달 같은 상호에 두광을 하고, 왼손에 정병을 쥐고 목마른 중생에게 생명수를 주듯 자비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병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라고 한다. 좌측 협시보살은 셋 중 조각 모습이 가장 섬세하고 화려하다. 굵은 목걸이와 영락(瓔珞)으로 치장돼 있고, 두광에는 꽃무늬와 다섯 개의 화불이 새겨져 있다. 신라 선방사란 옛 절터에 넘어져 있든 세 불상을 발견할 때, 본존불의 오른쪽에 누워있었다 하여 그 우측에 세워 대세지보살로 부른다. 세 불상은 이십여 년 전쯤에는 위·사방으로 막힘없이 트여, 그 형체가 원형대로 밝게 보였는데, 지금은 보호누각 속에 있어 답답하고, 미소 또한 엷어진 것 같다.

경주 남산 삼불사 전경.
요즘 이 삼존불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왼쪽 대세지보살 팔뚝에 전설의 꽃인 ‘우담바라’가 피어서이다. 실 날 같은 하얀 물질이 옆으로 피어나, 꽃처럼 보였다. 이 꽃은 3천년 만에 한 번 정도 핀다는 것으로, 부처나 전륜성왕이 태어날 때 피어나는 희귀한 꽃이라 전한다. 학계에서는 ‘풀 잠자리 알’로 통하지만, 불경에서는 부처님을 의미하는 성스럽고, 신비스런 꽃으로 전한다. 이 꽃을 보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에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다. 이 꽃을 찍은 사진을 작은 표구로 만들어 기념으로 보살 발아래 세워두고 있다.

옛날 남산 서쪽 마을에 권세 있는 재상이 부모 기일(忌日)에 고승을 초청했다. 당시 덕망이 있는 스님을 초청, 제사를 지내는 것을 최상의 효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셔온 스님은 남루한 복장에 볼품없는 탁발 중으로 보였다. 화가 난 재상은 ‘네가 무슨 고승이냐’고 고함을 치며 돌려보낸다. 배척을 당은 스님은 조용히 장삼소매를 떨치고, 그 속에서 작은 사자 한 마리를 꺼내더니 주술로 크게 키운 다음, 사자를 타고 남산 저쪽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이를 본 재상은 경솔함을 뉘우치고, 그 스님이 날아간 방향으로 온종일 절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 후부터 이 마을 이름을 절하는 동네 ‘배리(拜里)’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겸손의 교훈이 있는 좋은 마을에서 삼불의 해맑은 미소를 보았고, 평생 보기 힘든 전설의 꽃 우담바라까지 보는 행운을 얻었다. 모두 삼불의 선물이라고 여겨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손히 합장하고, 조용히 돌아섰다. 산속 숲길에는 벌써 낙엽 따라 선선한 가을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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