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적인 파도의 매력에 취해 기운찬 바람에 경북대종 올라 김한홍 선생 한시를 읊어본다

▲ 경북대종
동해안 7번 국도에서 만나는 어항은 개별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구계항 역시 주변 경관이 수려하기로 소문났다. 구계는 마을 앞 바위의 모양이 새우가 물에 떠 있는 것 같아 하부라 불렀고 이후 조금씩 변화하여 구배, 구계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 뒷산이 거북이 형상에다 깊은 계곡이 있어 구계라는 설도 있다. 이곳 바다에서는 홍게와 가자미가 많이 잡히고 대게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경부터 5,6월까지가 시즌이다.
구계항
바다의 위용에 반하다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만나온 바다는 대부분 잔잔했다. 온순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져 갯바위나 방파제를 세차게 내리치는 일도 없었다. 너무 순해서 단조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좋게 표현하면 순했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밋밋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바다는 거칠다.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속엣 것을 여과 없이 토해내고 있다. 어촌은 강풍의 영향으로 카오스 상태다.

기운찬 바람에 떠밀려 몸이 허공에 띄워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히려 뒤로 밀린다. 해안의 기상상태에 무지했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강풍에 날아온 판자나 나뭇조각 혹은 공터에 나뒹구는 자질구레한 건축자재 같은 게 느닷없이 얼굴을 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역동적인 바다 앞에서 망연자실했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성난 파도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다. 굽이굽이 몰려와 격정적으로 몸을 풀어내는 모습이 장관이다. 무엇보다 여행을 계속하게끔 결정에 도움을 준 건 태양이다. 바람은 거셌지만 흰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비치는 햇살은 눈부셨다.
해파랑& 블루로드길
구계리 마을에서 남호 해변 가는 길은 해파랑과 블루로드가 하나로 이어진다. 블루로드(Blue Road)는 우리말로 쪽빛 길이고 해파랑은 해와 푸른바다를 벗 삼아 걷는다는 뜻이니, 품은 의미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파도와 갯바위가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 남호해변 주변의 예쁜 펜션과 찻집에 머무는 것도 길 위에서 만나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고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 것도 낭만이다.
남호길 & 민물과 바다가 만나다
바다를 날다
민물이 바다를 만나는 남호 해변에는 갈매기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갈매기 반창회라도 열린 줄 알았다. 갈매기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곳을 바라봤고 한 놈이 푸덕대며 바다 위를 비행하면 그 옆의 놈도 날갯짓을 한다. 백사장엔 부모와 여행 온 어린 남매가 하얀 포말을 왈칵왈칵 쏟아내는 파도와 밀당스킬 중이다. 파도가 밀려가면 다가섰다가 밀려오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아난다.
삼사해상공원
해상공원 가는 언덕바지 카페 앞 야외 파라솔은 오늘 하루 날개를 펼 일이 없을 것 같다. 먼 지평선을 마주하고 선 푯말에는 바다와 청산이 한곳이라 청산명월이라는 춘원 이광수 선생의 시와 지금 이 순간, 사는 게 고되고 힘들어도 이것 또한 지나간다는 글귀가 나란히 적혀 있다. 길은 삼사해상공원까지 쭉 이어진다. 가다가 한 번쯤 멈춰 서서 왔던 길을 돌아보자. 하얀 손을 흔드는 억새가 새롭게 보일지 모른다.
삼사해상산책로
남정천 꽃다리를 건너면 강구읍 삼사리 해상 산책로다. 2011년 4월에 준공한 이 산책로는 길이 233m로 바다의 심장부를 향하듯 길게 뻗어 있다. 난간 위에 햇살이 걸려 있다. 장난기 많은 사내아이 셋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요동치는 파도를 구경한다. 교각이 높고 길어 더 환상적이다.

삼사리 마을은 대게와 문어를 선주가 직접 잡아 판다는 집이 많다. 금방 삶은 문어의 쫄깃함이 식욕을 자극한다. 아름답고 인심 좋은 곳은 먼 곳까지 소문이 나기 마련인지 영덕 강구는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최불암, 박상원, 송승헌이 출연한 ‘그대 그리고 나’의 주 무대였던 마을 앞길을 지나 삼사해상공원으로 접어든다. 이북도민 망향탑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20만 경북도내 실향민의 통일 염원과 망향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1995년에 준공되어 매년 이곳에서 합동 망향제’가 봉행된다.
해상공원망향탑
김한홍선생해유가비
매년 초 경북대종 타종식과 함께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삼사해상공원(三思海上公園)의 경북대종은, 신라 성덕대왕 신종을 본(本)으로 삼아 대금을 부는 천인상과, 사과를 든 비천상을 새겨 넣었다. 공원 내 하산 김한홍 해유가비가 있다. 김한홍 선생은 영덕 태생이며 1894년 향중의 시회(詩會)에 장원으로 뽑힐 만큼 일찍부터 한시에 소질을 보였다. 한양대 이노준 교수가 국내 유일의 국한문혼용으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고 평가한 작품을 잠시 감상해 보자.



광화문 육조 거리 잡초가 무성하고

보신각 옛집 앞에 검은 옷이 횡행이라

북악산 늦은 송백 만상이 서글프고

자화동 흐른 물은 여울소리 목 메이네



어지러운 나라에서 방황하다 이국땅 하와이로 건너가 지내면서도 김한홍 선생 마음엔 나라 걱정뿐이었다는 게, 시에 잘 드러나 있다.
송승헌이 아버지를 기다리며 앉았던 등대
오포해변
오포해변에서 테트라포드를 내리치며 하얀 꿈을 산란하는 파도에게 또다시 마음을 빼앗긴다. 오포항의 하얀 등대는 드라마 주인공 민규(송승헌)가 애견 도꾸와 나란히 앉아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린 곳이다. 마주보고 선 강구의 빨간 등대와 대비되어 애잔함을 느끼게 한 장면이다.

오십천을 바라보며 강구에 들어선다. 오십천은 강어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행정구역상 강구는 1, 2, 3, 4리로 분동(分洞)되어 있다. 강구 1리는 1917년 축항공사로 어선정박이 늘어나면서 갈대밭을 매립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다. 강구 2리는 골마을로 불렸는데 일제 때 변전소가 설치되면서 전기회사 마을로도 불렸다. 시가지 평지에는 일본인들이, 산비탈에는 한인들이 주로 살았다. 강구 3리는 일본인들이 평지를 차지해 버리자 우리 어민들이 개척하여 터전을 잡은 곳으로 대추가 많이 열린다하여 대추밭골이라 불렀다. 마지막으로 강구 4리는 강구항이 어업으로 번창하면서 새롭게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기동이라 하였다.
강구항
해파랑공원
먼 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던 어선 한 척이 거친 파도를 헤치며 강구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선은 자연과 대치하지 않는다. 물결위에서 유연하게 흔들릴 줄 아는 지혜를 가졌다. 계절에 상관없이 영덕 강구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경관이 수려하다. 여유와 인정도 있다. 집게발을 벌리고 까맣고 단단한 눈으로 인사를 건네는 대형 게 모형이 있는 강구교를 지나면 초입부터 대게거리가 이어져 동광어시장까지 이어진다. 가게마다 게 삶는 찜통이 허연 김을 뿜어낸다. 어시장은 당일 경매 받은 대게와 활어, 해산물로 넘쳐난다. 대게는 아이스박스에 넣어 가져 갈수도 있고 쪄서 가져갈 수 있다. 동광어시장 바로 옆이 해파랑 공원이다. 이곳에서도 가장 먼저 여행객을 반긴 건 영덕 대게 모형의 조각이다. 튼튼한 집게발이 영덕의 상징인 양 파르스름한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시원하고 매콤한 물회
자꾸 먹고 싶은 게
전복 비빔밥
◇여행자를 위한 팁

▶맛집

신항만 횟집


해상공원을 내려와 오포리 해변 근처. 진정한 세프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집.
▲ 글·사진 임수진 작가



시간이 넉넉하다면 대게를 추천하지만 갈 길이 바쁘다면 단품 메뉴도 일품.

여러 가지 과일이 들어간 새콤달콤한 스페셜 물회나 전복 비빔밥을 먹으면

덤으로 매운탕이 나온다. 덤이라 허술할 것 같지만 꽤 먹을 만하다.

손님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릴 수 있다. 번호표가 따로 없으니 참조.

주소 경북 영덕군 강구면 신강구길 83

문의 054-733-3544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해송과바다
파도와 밀당하는 아이들
이정표
바다와 청산이 한 곳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바다로 가는 길
하늘과 구름과 억새
언덕에서 바라본 삼사해상산책로
신항구 횟집 앞
신강구길에서 만난 동화같은 풍경
라이딩하는 사람들
오포리
오포에서 바라본 강구항
강구항으로 돌아오는 어선
나그네의 쉼터가 되어 주는 의자
강구재래시장
강구 대게거리
해파랑공원
해파랑공원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