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바다내음에 취해 힐링···과거 시간의 흔적을 더듬다
해맞이공원 돌비석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넉넉하고 깊다. 바람, 갈매기, 파도, 자동차 경적과 사람들 말소리가 살아있음을, 절대음감을 지닌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이곳에서 해파랑길 21코스 도보 여행은 시작된다. 이 길은 블루로드 ‘푸른 대게 길’ B 코스로 해안선 따라 축산항까지 이어진다. 그동안 경주에서 해안 따라 쭉 걸어오면서 멋지다, 아름답다. 비경이다. 장관이다 등, 어지간한 감탄사와 수식어는 얼추 다 뱉어낸 것 같다.
새천년기념 마을 숲이 트레이드마크인 오보리는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가 까마귀(烏)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올치미”라고 불렀다. 이 말이 전해 내려오면서 오보(烏保)로 바뀌었다고 한다. 부드러운 곡선의 오보해수욕장은 모래가 부드럽고 입자가 고우며 조용하고 평화롭다.
곧이어 만난 노물리는 지명이 특히 정겹다. 노물리라, 발음하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곳 역시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단 「노물(老勿)」이 늙지 말라는 뜻이니 장수(長壽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물(勿)자는 고구려 계통의 언어로 4∼5세기 경 고구려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영덕 지명을 야시홀이라 지었는데 그때 함께 지어진 이름으로 추측하고 있다.
따스한 볕이 마을 지붕에 소복하게 내려앉아 있고 동네 앞 가로등에는 갈매기 한 마리가 올라앉아 마치 수호신처럼 동네를 굽어보고 있다. 어항에 오종종히 내려앉아 고깃배를 기다리며 수다 떠는 갈매기를 프레임 속으로 불러들인다. 자연산 돌미역이나 미역귀, 오징어가 필요하면 직접 판매하는 집이 있으니 사도 괜찮을 것 같다. 넉넉한 마음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드디어 대게 원조마을인 경정2리에 도착했다. ‘차유마을’로도 불리는 이곳은 고려 29대 충목왕 때 영해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수레 ‘차’(車), 넘을 ‘유’(踰)를 써서 차유마을로 불린다. 마을 입구 언덕에 대게 원조비와 함께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대게는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곧고 마디가 있어 ‘대(竹)게’라 불린다.
말미산을 벗어나니 부드러운 곡선으로 둥글게 휘어진 축산 해변과 죽도산 전망대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선다. 블루로드 다리는 고고한 죽도산과 어우러져 장엄한 풍경으로 완성된다. 축산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모래톱엔 갈매기 떼 한가롭고 블루로드 다리는 저녁노을 받아 환상적이다. 아름다운 항구로 알려진 축산은 그 형상이 소를 닮아 축산”이라 불리며 마을에 들어가 보면 크지는 않지만 대게처럼 속이 꽉 찬 항이란 게 느껴진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좋은 에너지가 항구에 소복이 고여 있는 것 같다.
◇ 여행자를 위한 팁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으로 이어지는 해파랑길 21코스는 블루로드 B코스와 연계되어 있다. 환상의 바닷길과 숲, 온갖 종류의 기암괴석을 만날 수 있어 힐링과 마음 치유에도 효과적. 하늘과 바다와 산과 사람과 지질공원은 물론 청룡과 백호의 기까지 받을 수 있는 환상의 도보 코스다. 이곳은 도중에 길을 잃을 염려도 거의 없다. 해안선 따라 줄곧 걸으면 되고 표식도 잘 되어 있다. 노물리와 석리, 차유마을에서 송림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만 조금씩 신경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