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 그윽한 목은 사색의 길 걸으며 詩想에 젖다
죽도산을 수문장처럼 어귀에 두고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는 축산항이다. 영덕의 대표적인 어항, 대게 위판장이 열리는 전국 5개항 중 한 곳. 와우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대소산이 서풍을, 죽도산이 남풍을 막아주는 피항지로도 유명한 곳, 축산항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현재 남씨의 시조가 된 영의공(위민)은 당나라 하남성 여남 사람이었다. 위민은 755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일본을 다녀오던 중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영양 땅(지금의 영덕군 축산면)에 머물게 된다. 뜻하지 않게 위민이 신라에 살기를 원하니 경덕왕이 이런 사실을 당에 알리자 현종이 허락하였다. 경덕왕은 그가 중국 여남에서 왔다하여 남씨(南氏)를 내리고 영양현을 식읍으로 내렸다한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려있는 산을 내려서니 눈앞이 환한 바다다. 북쪽으로 1km나 올라 왔을까, 잘 다듬어놓은 해안 길을 두고 또 산으로 들어선다. 온통 소나무 군락지다. 겨울을 맞은 솔잎이 한창 푸르다. 소나무숲길이 구불구불, 나무계단이었다가 흙길이었다가, 이제는 푹신푹신한 낙엽 쌓인 길이다.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서야 봉화산 정상에 오르니 대소산봉수대가 기다리고 있다.
목은 이색의 생가터 무가정지에 햇살이 스며들고 있다. 따스한 겨울 빛 속에서 문인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며 마을로 내려선다. 이 마을은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松川)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촌이라 불렀었다. 선생이 원나라에 유학할 당시 대학자였던 구양현의 고향인 괴시처럼 시야가 넓고 풍광이 아름답다 해서 괴시(槐市)로 개명했다한다. 선생의 외조모가 지금 괴시마을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영양남씨다.
마을 입구 이끼 앉은 비각 앞에서 주춤, 걸음을 멈춘다. 금줄을 두른 신령스러운 나무, 노목 앞에는 ‘축귀장군남정중(逐鬼將軍南正重)’이라고 음각한 비각이 서 있다. 여기에는 또 마을의 어떤 전설이 깃들어있을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며 돌아서는 시선, 저기 동쪽 산꼭대기에 단정한 기와집. 저기가 바로 목은 이색이 동해바다에 온갖 물고기가 헤엄쳐 노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셀 수도 있었다는 관어대인가 보다.
△교통편: 대진항에서 축산항으로 가는 버스 시간
7:12, 8:52, 10:12, 11:22, 12:42, 13:42, 15:12, 16:52, 18:22, 19:12
△여행자를 위한 팁: 축산항에서 괴시마을까지(약 8km)는 온통 송림 우거진 숲길이다. 그렇게 높지는 않은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고불고불한 산허리를 수십 번은 돌아나가다 보면 저절로 사색의 길로 빠져든다. 적막감은 있지만 햇살이 솔잎 사이로 스며들어 아라베스크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이 환상적이다. 하지만 계속 산길이다 보니 여자라면 동행이 있어야겠다. 괴시마을에서 대진항(2.8km)까지는 인가를 옆에 두고 있는 포장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