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함의를 떠올린 상트페테르부르크
혁명의 함의를 떠올린 상트페테르부르크
  •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 승인 2018년 01월 15일 17시 03분
  • 지면게재일 2018년 01월 16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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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해외여행은 ‘이동하는 여정’과 ‘머무르는 여정’으로도 대별된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은 대부분 정해진 일정을 쫓아서 끊임없이 옮겨간다. 반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자유 여행은 나름 여유로운 유람이 가능하다.

정여울 작가의 베스트셀러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에는 한 달쯤 살고 싶은 도시 열 곳이 소개된다.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일견했던 몇몇 유명 장소도 눈에 띈다. 유서 깊은 도회에서 상당 기간 즐긴 체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주마간산이 아니라 속살을 들여다보는 체화된 추억을 간직하기에 그렇다.

나의 경우 보름 정도 머물렀던 명소가 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다. 현지에선 ‘빼째르’라고도 부른다. 그곳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지인의 거처에 불고염치 캠프를 차리곤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서울의 한강에 비견되는 네바 강과 광화문 대로에 버금가는 넵스키 대로는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유유자적 이국의 풍광을 접하며 수차례 걸었으니 지도가 그려진다.

근자에 도서관 서가를 훑어보다가 괜찮은 서적을 만났다. ‘가고 싶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책이다. 중학 교사로 재직하다가 여행 작가로의 꿈을 안고서 교단을 떠난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처녀작. 게다가 목차를 살펴보니 낯익은 장면이 아닌가. 시종일관 내가 찾아갔던 탐방지가 약속처럼 망라됐다.

처음 1장 에르미타주부터 국립 러시아 박물관, 그리스도 부활 성당, 성 이삭 성당, 카잔 대성당,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넵스키 수도원과 티흐빈 묘지, 그리고 마지막 8장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까지.

차이가 있다면 백야와 버스킹, 강변 산책로와 지하철 등의 내재된 풍경 묘사가 없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 책은 100주년이 지난 볼셰비키 혁명의 역사적 무대인 빼째르를 회상하는 계기가 됐다. 주마등처럼 당시의 기억이 스쳐 갔다.

‘성 베드로의 도시’를 뜻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네바 강 삼각주의 백여 개 섬에 건설됐다. 개혁 군주 표트르 대제는 유럽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천도했다. 그가 직접 작명한 이름도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로 바뀌었다가 복원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내가 기거하는 아파트 인근의 지하철을 타면, 이십여 분이 채 안 걸려 아드미랄테이스카야 역에 당도한다. 넵스키 대로 쪽으로 나가면 바로 궁전광장이다. 그 중앙엔 알렉산드르 1세 기념탑이 우뚝하다. 탑을 중심으로 에르미타주 미술관으로 쓰이는 겨울궁전과 광장을 반원형으로 둘러싼 구 참모본부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

유월의 찬기가 감도는 궁전광장에 서니 장소의 정령이라도 만난 듯한 감회에 젖었다. 제정 러시아 전환기에 일어난 중요한 의거의 현장이라 의미심장하다. 볼셰비키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과 1917년 2월 혁명에 이은 10월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던 발원지. 러시아 혁명은 사회주의를 태동시킨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물론 그 이상을 실현하진 못했으나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챙긴다는 철학을 널리 퍼뜨렸다.

혁명이란 개념은 두 가지를 연상시킨다. 유혈낭자와 천지개벽. 피비린내 진동하는 처참한 살육과 엄청난 변화가 따르는 개혁이 그것이다. 그 처절한 시도는 기나긴 역사의 맥락에서 관조하면, 인과 관계로 연결된 혁명적 사건의 도도한 흐름이다. 실패한 듯하나 끈질긴 생명력으로 변혁과 진보의 징검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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