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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신년 벽두 방영된 ‘설국열차’는 특이한 필름이다. 한국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방화이면서도, 출연 인물은 대부분 외국인이고 영어 대사와 한글 자막으로 전개된다. 새하얀 눈밭의 애틋한 사랑이 펼쳐질 듯한 제목과는 딴판으로 폐쇄된 공간의 폭력이 섬뜩하다.

요지는 한랭한 지구의 환경을 피하고자 설원을 끝없이 달리는 설국열차 안에서, 무임승차로 바글대는 꼬리 칸의 하층민이 상류층과 지도자가 자리한 앞쪽 칸을 점령코자 폭동을 일으키는 내용. 한 번 본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는 어느 평론가의 비평이 공감될 정도로 난해한 흐름이다.

기차는 영화나 문학의 배경으로 곧잘 등장한다. 빠른 속도로 스치는 차창 밖 풍경과 규칙적인 철궤의 울림이 발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늑하게 때로는 급박하게 다가오는 이중적인 감정. 감미로운 세레나데가 흐르는 밤열차의 포근함이나 생사의 순간을 다투는 드잡이가 연상되는 무대다.

오랜 세월 인류는 육상의 이동 수단으로 말과 수레를 이용했다.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속도의 한계에 갇혔다. 한데 기차를 창안함으로써 이런 장애를 극복했다. 더 빨리 더 많은 인력과 물자의 수송이 가능해진 것이다.

세계 최초로 기차를 발명한 사람은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이다. 1813년 증기 기관차를 만들고 시운전에 성공했다. 이후 영국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 처음으로 상업용 철도가 개통됐다. 당시 승객과 화물을 싣고 시속 40km의 속도로 달렸다. 탑승했던 유명 여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흥미롭다. 그녀는 ‘날아가는 듯 빨랐다’고 전한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답답할 정도로 굼뜬 역주일 텐데 말이다.

대중교통의 하나인 철도는 시대의 물줄기를 견인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1869년 부설된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는 서부 개척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광활한 땅덩어리를 하나로 묶는 동아줄이 되었다. 덕분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의 역사를 바꾼 1000가지 사건’에도 포함됐다.

지구상 가장 긴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9,334km로 시종점이 7박 8일 걸리는 대장정. 이 철도가 완공된 이후 러일전쟁이 발발했다면 결과가 뒤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는 병참선이 길어 싸움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독일과의 협상으로 치외 법권이 인정된 레닌의 ‘봉인열차’는 러시아 제국의 종말을 고하면서, 사회주의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막후의 공로자였다. 스위스 취리히에 망명 중인 레닌은 페트로그라드로 귀국하여 볼셰비키 혁명을 이끌었다.

7번 국도와 더불어 동해 바다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동해중부선 포항∼영덕 구간 열차가 오는 26일 개통된다. 버킷리스트까진 아니어도 개인적인 소망이 성취된 듯하여 반갑다. 해변에 기찻길이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곤 했었다.

근자 처음이자 마지막인 시승식에 참석하는 행운을 누렸다. 사전 신청한 60여 명이 탑승한 행사이다. 포항역을 출발하여 월포역~장사역~강구역~영덕역에 이르는 반 시간 남짓의 여행길. 모두 11개의 터널을 지나고 푸른 동해는 완상이 어려워 아쉬웠다.

무인 역사인 장사역을 포함해서 전체 역을 스마트화하여 매표창구가 없다고 한다. 농촌의 어르신들 어려움이 예상된다. 열차 내외관은 영덕대게와 블루로드와 복사꽃 그림으로 치장하여 산뜻한 나들이의 감흥을 주었다. 이웃한 중소 도시가 상생 발전하는 소통의 철로가 열렸다. 삼척까지 질주하는 철마의 꿈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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